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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이 만든 ‘페이팔 마피아’ 메커니즘

피터 틸과 페이팔 마피아
피터 틸과 페이팔 마피아

이 에세이는 2014년에 처음 출간된 그의 저서 『Zero to One』(제로 투 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사고실험을 하나 해보자. 정말 이상적인 회사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직원들이 자기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무실에 오는 게 너무 즐거워서 굳이 근무 시간을 따질 필요도 없고, 누가 시계를 보며 퇴근만 기다리는 일도 없다. 사무실은 칸막이로 나뉜 답답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집처럼 편하게 쉴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파일 캐비닛보다 빈백 소파나 탁구대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무료 마사지나 사내 스시 셰프, 요가 수업 같은 복지도 분위기를 한층 더 즐겁게 만들어준다. 반려동물도 환영이다. 직원들이 데려온 강아지나 고양이가 사무실의 열대어 수조에 합류해서 자연스럽게 회사의 비공식 마스코트가 될 수도 있다.

이 그림에서 빠진 게 뭘까?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해진 각종 황당한 복지들은 잔뜩 들어가 있지만, 정작 중요한 본질은 빠져 있다. 본질 없는 복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사무실을 멋지게 꾸미려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고용하거나, 인사 정책을 손보겠다고 HR 컨설턴트를 부르거나, 그럴듯한 슬로건을 만들겠다고 브랜딩 전문가를 쓴다고 해서 진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회사의 문화라는 건 회사와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어떤 회사도 ‘문화’를 따로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그 회사 자체가 곧 하나의 문화다. 스타트업이란 결국 미션을 향해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의 팀이고, 좋은 문화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팀의 모습일 뿐이다.

프로페셔널리즘을 넘어서

내가 처음 만들었던 팀은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로 불린다. PayPal을 함께 만들었던 동료들이 이후에도 서로 힘을 합쳐 수많은 성공적인 테크 기업을 창업하거나 투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02년에 PayPal을 eBay에 15억 달러에 매각했다. 그 뒤로 Elon Musk는 SpaceX를 창업하고 Tesla Motors 공동창업에 참여했고, Reid Hoffman은 LinkedIn을 만들었으며, Steve Chen, Chad Hurley, Jawed Karim은 함께 YouTube를 세웠다. Jeremy Stoppelman과 Russel Simmons는 Yelp를, David Sacks는 Yammer를, 그리고 나는 Palantir를 공동 창업했다. 지금 이 일곱 개 회사 모두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PayPal 시절 사무실 복지나 편의시설은 언론에 크게 알려진 적이 없지만, 우리 팀은 함께 있을 때도, 각자 흩어진 이후에도 놀라운 성과를 냈다. 그만큼 PayPal의 조직 문화는 회사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이어질 만큼 강력했다.

우리는 단순히 이력서를 쭉 훑어보고, 가장 유능해 보이는 사람들만 뽑아서 ‘마피아’를 만든 게 아니다. 내가 뉴욕의 한 로펌에서 일할 때, 그런 방식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 그곳 변호사들은 각자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었고, 회사도 충분히 가치 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상하리만치 얕았다. 하루 종일 함께 일하면서도, 정작 사무실을 벗어나면 서로 나눌 얘기도 별로 없었다. 서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굳이 한 팀이 되어 일할 이유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직장을 단순히 ‘프로페셔널’한 공간, 즉 각자 자기 일만 하고 퇴근하는 곳으로만 보는 태도는 냉정한 수준을 넘어서, 사실 비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자산인데, 장기적으로 함께할 미래도 그려지지 않는 사람들과 그 시간을 보내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회사에서 보낸 시간의 결과로, 오래 지속될 관계조차 남지 않는다면, 그건 심지어 돈의 관점에서만 봐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나는 PayPal을 처음부터 단순히 일만 하고 각자 따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서로 끈끈하게 연결된 팀으로 만들고 싶었다. 강한 유대감이 있으면 우리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PayPal을 떠난 뒤에도 각자의 커리어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실력만 좋은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이 팀에서 함께 일하는 것 자체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페이팔 마피아’가 시작됐다.

핵심 멤버(Conspirators) 채용하기

채용은 어떤 회사든 가장 핵심적인 역량이다. 이 일은 절대 외부에 맡겨서는 안 된다. 단순히 이력서상으로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함께 일할 때 팀으로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초반 네다섯 명은 큰 지분이나 중요한 역할 같은 조건에 이끌려 합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눈에 보이는 혜택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왜 우리 회사의 20번째 직원이 여기에 합류해야 할까?”

유능한 사람들은 굳이 우리 회사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 선택지는 얼마든지 많으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더 날카롭게 바꿔봐야 한다. “왜 어떤 엔지니어가 더 높은 연봉과 더 큰 명성을 보장하는 Google 같은 대기업 대신, 우리 회사의 20번째 엔지니어로 들어오려고 할까?”

여기 몇 가지 좋지 않은 답변이 있다. “우리 회사에서 스톡옵션을 받으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얻게 될 거예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요.” 스톡옵션, 뛰어난 동료, 의미 있는 문제-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모든 회사가 똑같이 한다. 그래서 이런 답변으로는 우리 회사가 왜 특별한지, 왜 많은 선택지 중에서 굳이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막연하고 평범한 제안은 지원자에게 우리 회사만의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한다.

정말 좋은 답변은 우리 회사에만 해당되는 구체적인 이야기여야 한다. 그래서 그런 답은 이 책에서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좋은 답변에는 두 가지 공통된 유형이 있다. 바로 우리의 미션에 대한 답과, 팀에 대한 답이다. 우리 팀이 왜 이 미션에 진심인지, 그리고 왜 이 일이 꼭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인재를 끌어올 수 있다. 그냥 세상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일은 우리만이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만 그 미션의 진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 PayPal의 경우, ‘미국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디지털 화폐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에 진심으로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언제든 만나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팀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미션이 있어도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몰입해서 일할 만한 인재라면, “이 사람들이 정말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팀일까?”라는 점도 반드시 따져본다. 그래서 우리 회사가 그 사람에게 왜 특별히 잘 맞는 곳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설명을 해줄 수 없다면, 애초에 그 사람도 우리 팀에 잘 맞는 인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복지 경쟁에 휘말리지 마라. 세탁 서비스나 반려동물 돌봄 같은 복지에 더 끌리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우리 팀에 어울리지 않는 인재다. 건강보험처럼 기본적인 복지만 챙기고, 그 대신 다른 회사에서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가치를 약속해야 한다. 바로,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연봉이나 복지로는 2014년의 Google을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미션과 팀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다면 1999년의 Google처럼 될 수는 있다.

실리콘밸리의 후디 속엔 무엇이 있을까

겉으로 볼 때, 당신 회사의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게 다르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

동부에서는 업계에 따라 모두가 비슷한 스키니진이나 줄무늬 정장을 입지만, Mountain View나 Palo Alto의 젊은이들은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한다. 테크 업계 사람들이 옷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흔한 고정관념이지만, 실제로 그 티셔츠를 자세히 보면 각자 다니는 회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 로고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외부 사람들이 스타트업 직원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로고가 박힌 티셔츠나 후디 덕분이다. 동료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다는 건, 단순한 복장이 아니라 스타트업만의 본질적인 원칙을 상징한다. 즉, 회사의 모든 구성원은 ‘비슷한 색깔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같은 미션에 열정적으로 몰입한 사람들이 하나의 부족(tribe)처럼 단단하게 뭉쳐 있다는 의미다.

PayPal의 공동 창업자인 Max Levchin은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최대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고 말한다. 스타트업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팀도 작기 때문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는 모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할수록 협업이 훨씬 쉬워진다. PayPal 초창기 팀이 잘 굴러갔던 것도, 우리 모두가 비슷한 ‘덕후’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했고, Cryptonomicon은 필독서였으며,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스타워즈를 공산주의적 색채가 강한 스타트렉보다 더 선호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는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 직접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를 만들겠다’는 목표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회사가 잘 돌아가려면, 겉모습이나 출신국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 합류하는 사람 역시 우리만큼 이 목표에 집착하는 사람이길 바랐다.

한 가지에 집중하라

조직 내부에서는, 각 구성원이 맡은 일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스타트업에서 직원들에게 역할을 배분할 때, 단순히 각자의 능력과 업무를 효율적으로 매칭하는 ‘최적화 문제’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걸 완벽하게 해낸다 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금방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그 이유 중 하나는 스타트업이 워낙 빠르게 움직여야 해서, 각자의 역할이 오래 고정되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역할 배분이 단순히 ‘사람과 일’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ayPal에서 내가 매니저로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모든 직원에게 딱 하나의 고유한 책임을 맡겼던 것이다. 각자 맡은 역할이 모두 달랐고, 나는 오직 그 한 가지 일만으로 직원들을 평가했다. 처음엔 단순히 인사 관리가 쉬워질 거란 생각에 이렇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은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역할을 명확하게 정의하니 내부 갈등이 줄어든 것이다. 회사 내에서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싸움은, 동료들끼리 같은 책임을 두고 경쟁할 때 생긴다. 스타트업은 특히 초기에 역할이 유동적이라 이런 위험이 크다. 경쟁 구도를 없애면, 단순한 ‘프로페셔널’ 이상의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쌓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부의 평화가 있어야 스타트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스타트업이 실패하면 우리는 흔히 외부의 강력한 경쟁자에게 당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회사도 하나의 생태계이고, 내부 분열이 있을 때 외부 위협에 훨씬 취약해진다. 내부 갈등은 마치 자가면역질환과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인은 폐렴 같은 외부 요인일 수 있지만, 진짜 원인은 내부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갈등일 때가 많다.

컬트와 컨설턴트

조직 문화가 극단적으로 몰입된 곳에서는, 구성원들이 오직 같은 조직 사람들과만 어울린다. 가족이나 바깥 세상은 뒷전이고, 오직 내부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낸다. 그 대가로 강한 소속감을 느끼고, 평범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특별한 ‘진실’을 공유한다고 믿는다. 이런 조직을 우리는 ‘컬트(사이비 집단)’라고 부른다. 외부에서 보면 이런 전적인 헌신의 문화는 미친 짓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악명 높은 컬트 집단들은 살인 사건까지 저질렀고, Jim Jones나 Charles Manson 같은 인물들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창업가라면 이런 극단적인 헌신의 문화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일에 미지근하게 임하는 태도가 정말로 건강한 것일까? 단순히 ‘프로페셔널’하게만 일하는 게 유일하게 정상적인 방식일까? 컬트의 정반대에 있는 조직이 바로 Accenture 같은 컨설팅 회사다. 이런 곳은 뚜렷한 미션도 없고, 소속감도 약하다. 컨설턴트들은 회사와 아무런 장기적 인연 없이 이곳저곳을 오가며 일한다.

모든 회사의 조직 문화는 하나의 선형 스펙트럼 위에 위치할 수 있다.

조직 문화 스펙트럼
조직 문화 스펙트럼

가장 뛰어난 스타트업은 어쩌면 조금 덜 극단적인 컬트라고 볼 수도 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컬트는 뭔가 중요한 부분에서 완전히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지만, 성공한 스타트업의 구성원들은 남들은 미처 보지 못한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믿음과 집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비밀은 컨설턴트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회사가 전통적인 전문가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차라리 컬트, 아니면 마피아라고 불리는 편이 낫다.


원문: The Mechanics of Mafia by Peter Th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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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chanics of Mafia by Peter Th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