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현실을 만드는 시대
감각과 전문성이 공존하는 새로운 일의 세계
영향력 있는 AI 연구자 Andrej Karpathy는 2년 전 “가장 핫한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는 영어(English)”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vibecoding(바이브코딩)”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는데, 이것은 AI에게 원하는 것을 그냥 영어로 요청하고, 중간중간 피드백을 주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 접근법이 단순히 코딩에만 국한되지 않고 훨씬 더 넓은 분야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선 저 자신이 직접 vibecoding을 해보면서 그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Anthropic의 새로운 Claude Code 에이전트를 직접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 에이전트는 Claude Sonnet 3.7 LLM이 내 컴퓨터의 파일을 조작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사실, Claude Code를 제대로 쓰기 전부터 이미 AI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통계에 쓰이는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만 조금 다룰 줄 알고, 리눅스는 완전히 초보였거든요. 그런데 Claude Code는 리눅스 환경에서만 작동합니다. 다행히 Claude가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줬고, AI와 함께 ‘vibetroubleshooting(감으로 문제 해결하기)’을 하다 보니 결국 Claude Code 설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아직AI로 문제 해결을 해본 적 없다면 꼭 한번 시도해보세요.

“여러 가지 디자인의 건물을 배치하고, 내가 만든 마을을 직접 운전해서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줘.” 딱 이 한 문장만 입력했습니다. 문법이나 철자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써서 보냈죠. 그랬더니 약 4분 만에, 추가로 아무런 입력도 하지 않았는데, Claude가 친절하게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되는 실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줬습니다. 아래 영상에서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꽤 신기하긴 했지만, 뭔가 좀 심심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음, 전체적으로 좀 심심한데? 그리고 큰 건물들은 제대로 배치가 안 되는 경우도 있어. 내가 소방차를 조종해서 건물에 난 불을 끄는 미션을 추가해볼까? 자동차나 교통량도 넣을 수 있겠네”
몇 분 뒤, Claude는 제 자동차를 소방차로 바꿔주고, 도로에 교통량도 추가했으며, 집들이 불길에 휩싸이도록 만들어줬습니다. 이제 뭔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여전히 손봐야 할 부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Claude에게 이렇게 피드백을 줬습니다. “확실히 나아졌는데, 소방차가 움직일 때 외형이 바뀌고(갑자기 바퀴가 생긴다든가), 교통이 있어도 별다른 문제나 도전 요소가 없네. 그리고 불도 번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1980년대 게임처럼 보여. 전반적으로 훨씬 더 멋지게 만들어줘.”
결과물을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세 가지 질문을 연달아 던졌습니다. “게임을 리셋할 수 있을까? 건물들을 좀 더 실제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내 경쟁자로 불을 끄는 헬리콥터도 추가해줄 수 있어?” 아래 영상에서 이 네 번의 프롬프트로 만들어진 결과물을 볼 수 있습니다. 완성된 게임은 다소 투박하긴 해도, 낮과 밤의 변화, 빛 반사, 미션, 그리고 AI가 조종하는 경쟁자까지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게, 가장 핫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영어(English)’만으로 만들어졌죠.

사실, 한 가지 빼먹은 내용이 있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프롬프트 사이에 갑작스럽게 문제가 발생해 게임이 아예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JavaScript나 해당 게임에 사용된 언어에 대한 프로그래밍 지식이 전혀 없는 저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AI와의 소통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제가 오류를 보고하면 AI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식이었죠. 20분 간의 대화 끝에 모든 것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아진 상태였습니다. 최종적으로, 이 게임 제작에는 Claude API 사용료로 약 $5가 들었고, 버그 해결에는 추가로 $8이 소요됐습니다. 그 버그는 알고 보니 매우 단순한 문제였습니다. 이런 부분에 드는 돈은 앞으로 더 줄어들겠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vibecoding”은 AI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을 갖추고 있을 때 훨씬 더 유용하다는 점입니다. 더 능숙한 개발자라면 에셋 로딩(asset loading)이나 이벤트 처리(event handling)와 같은 기술적 문제를 즉시 파악했을 겁니다. 또한, 이는 소규모 프로젝트였을 뿐입니다. 대규모 코드베이스나 복잡한 작업에서는 AI와 협업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손을 봐야 할 부분이 훨씬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vibecoding이 전문성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전문성이 필요한 지점을 바꿔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모든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 대신, 시스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방향을 제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물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죠. 결국 중요한 건,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AI와 효과적으로 협업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한지 그 기준을 찾는 일입니다.
전문성을 살리는 Vibeworking
단어만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도 전문성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결국,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명확히 알아야 하고, 결과물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적절한 피드백도 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제 책에서도 썼듯이, 지금의 AI와는 ‘공동 지성(co-intelligence)’으로 협업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AI가 아직 완벽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의 전문성과 판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문성을 발휘한다고 해서 반드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중국에서 출시된 새로운 AI 에이전트인 Manus를 사용해 봤습니다. 이 에이전트는 기본적으로 Claude(그리고 아마도 다른 LLM들도) 기반이지만, AI가 웹 리서치, 코딩, 문서 및 웹사이트 제작 등 다양한 도구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접해 본 범용 AI 에이전트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었지만, 다른 범용 에이전트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실수나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최고의 학술적 조언을 활용해 엘리베이터 피칭(elevator pitching)에 대한 인터랙티브 코스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 시스템이 실제로 수행한 작업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시스템은 먼저 해야 할 일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각 항목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면서 페이지를 만들기 전에 웹 리서치를 진행합니다. (아래 영상은 과정을 빠르게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수십 분에서 몇 시간에 걸쳐 AI가 자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창업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겉보기에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피칭의 기본을 두루 다루는 완성된 코스였고, 눈에 띄는 오류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전체적으로 텍스트 위주라서 지식 확인이나 실습 등 인터랙티브한 요소가 부족하다는 점이 바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AI에게 두 번째로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코스 내용 안에 직접 인터랙티브한 경험을 추가하고, 퀄리티가 높은 영상 링크도 넣어줘.” 사실 이 정도 피드백만으로도, 아래에서 볼 수 있듯 코스가 훨씬 더 개선됐습니다.

만약 실제로 이 코스를 공개해야 한다면, AI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하거나 결과물을 꼼꼼하게 다듬었겠지만, 이렇게 간단한 피드백만으로도 이 정도 수준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vibework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코스 제작처럼 비교적 단순한 창의적 작업은 최소한의 가이드만으로도 AI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지만, 연구처럼 더 복잡한 과제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AI의 협업이 요구됩니다.
전문가 수준의 심층 협업 (Deep Vibeworking)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최전선에서 AI는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다만, 이런 작업들은 글로 설명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분야이기도 한데요,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거의 10년 전에 수집해둔 크라우드펀딩 관련 대규모 익명 데이터가 있는데, 아직 한 번도 연구에 활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데이터는 방대한 Excel 파일과, 각 항목의 의미를 설명하는 코드북(codebook), 그리고 각 데이터 항목을 자세히 정의한 데이터 딕셔너리(data dictionary)로 이루어져 있어 구조가 꽤 복잡합니다. 이런 데이터를 다루려면 여러 파일을 계속 번갈아가며 참고해야 해서, 오랜만에 다시 작업하려면 특히나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갑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AI의 도움을 받아, 이 오래된 데이터를 가지고 새로운 연구 논문을 어디까지 써볼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먼저 OpenAI Deep Research를 활용해, 조직이 크라우드펀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최신 연구 동향 리포트를 받아봤습니다. 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이 리포트의 내용을 직접 검토할 수 있었고, Deep Research가 유료 학술 자료에는 접근하지 못해 모든 최신 논문이 포함되진 않는다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포트의 결론은 충분히 탄탄했고, AI가 앞으로 어떤 주제를 탐색할지 결정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 리포트와 세 개의 데이터 파일을 대학에서 제공하는 보안 버전 ChatGPT에 업로드한 뒤, 여러 AI 모델과 함께 다양한 가설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AI가 여러 가지 연구 방향을 제안해주었지만, 실제로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주제를 가려내는 일은 결국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험이 필요한 판단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리고 AI 모델과 계속해서 소통하며 가설을 검증하고 결과의 정확성을 확인했습니다. AI는 복잡한 데이터 분석을 처리했고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다음 단계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몇 차례 AI가 통계적으로 타당한 접근법을 제안했지만, 해당 데이터에 대한 내부 지식을 바탕으로 볼 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죠. 결국 AI와 함께 협력했고, 신뢰할 만한 결과물을 도출해냈습니다.

이전까지의 모든 결과물을 o1-pro에 넘겨주고, 논문을 작성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중간중간 몇 가지 제안도 더했습니다. 물론 이 논문이 대단한 화제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결과를 조금 더 꼼꼼히 검토한다면 충분히 학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 모든 과정이 몇 주씩 걸리는 기획, 집필, 코딩, 수정 작업 대신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완성됐다는 사실입니다. 설령 결과물을 검토하는 데 한 시간이 더 걸린다 해도, 엄청난 시간 절약이 되는 셈이죠.
저는 코드 한 줄도 직접 짤 필요가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논리적으로 맞는지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모든 작업을 영어로만 진행했는데, AI 덕분에 수십 시간은 족히 걸렸을 일을 단숨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AI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감각’까지 갖추진 못했기 때문에, 곳곳에서 사람이 개입해야 했습니다. AI가 혼자서 모든 걸 해내기엔 아직 갈 길이 멀고, vibework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인간이 감각과 실제로 중요한 부분 모두를 담당해야 합니다.
일의 방식이 변하고 있다
일의 방식이 변하고 있고, 우리는 이제 막 그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이번 실험들을 통해 분명해진 건, 인간의 전문성과 AI의 역량 사이의 관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떤 순간에는 제가 창의적인 디렉터 역할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문제를 해결하는 트러블슈터, 혹은 결과를 검증하는 도메인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결과물의 수준을 결정한 것은, 저의 다양한 전문성-그리고 때로는 그 전문성이 부족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기는 과도기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이 도구들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돌아갈 만큼 신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놀라울 정도로 확장시켜주고 있습니다. 게임을 디버깅하면서 $8이 추가로 든 경험만 봐도, AI의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전문성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변화의 속도가 정말 빠르다는 점입니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AI의 도움을 받아 한 시간 만에 논문을 완성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AI가 앞으로 일의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변화하는 대상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확실히 느낀 점은, AI에게 모든 통제권을 넘기거나 반대로 인간만의 방식에만 집착하는 것보다, 각 작업마다 AI와 인간이 어떻게 협업할지 그 접점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원문: Speaking things into exis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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