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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감 있는 것을 만드세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정작 그 모든 것에는 아무런 무게감이 없습니다.

Maira Kalman, 2022.
Maira Kalman, 2022.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게와 가치를 연결짓습니다.

금은 단단하고, 나무는 밀도가 높죠. 그리고 예전 문서를 종이에 출력해서 썼던 시절, 무거운 스테이플러(Stapler)는 일종의 사치품이었습니다.

어떤 것이 무겁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죠. 무게감은 품질, 내구성, 존재감, 그리고 영속성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물건만 봐도 이 사실이 드러납니다. 처음에는 조립도 쉽고 버리기도 편한 값싸고 가벼운 가구를 삽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우리는 묵직한 것을 원하게 됩니다. 단단한 오크 테이블, 가죽 암체어처럼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무게감 있는 물건들을 찾게 되죠. 무거운 물건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무게 있는 이불은 몸을 편안하게 해주고, 묵직한 현관문은 집을 더 안전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큰 상을 받은 수상자들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거의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와, 이거 정말 무겁네요.” 마치 그 무게 자체가 자신의 성취를 증명해주는 것처럼 말이죠. 논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가벼운 성취에는 가벼운 상이, 무거운 성취에는 무거운 상이 따라옵니다.

이런 사실은 오프라인, 즉 현실 세계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걸 잊고 살죠.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가벼운 것’을 만들어내는 기계에 가깝습니다.

오늘날 창작자들이 사용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은 당신이 무거운 것을 만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이 시스템은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돌아가고,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며, 빠른 속도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순간적인 관심, 끝없는 스크롤, 스크린샷 같은 것들이 전부입니다. 무거운 것에는 본능적으로 저항하고, 조금이라도 번거로운 일은 피하려 듭니다. 인내심이나 신중함, 깊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성’만이 전부죠.

이 시스템은 당신이 무엇을 만드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저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뿐이죠.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가볍게. (심지어 질 낮은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한 번에 훅 소비하고 바로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요구합니다. 무거운 것을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여기서 시간은 곧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어쩔 수 없이 이 흐름에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모든 것에는 아무런 무게감이 없습니다.

요즘 AI는 고민도 노력도 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너무 쉽게 만들어진 창작물에는 결국 아무런 무게감도 남지 않습니다. 누구도 버튼 한 번 눌러서 자신의 인생작을 만들고 싶어 하진 않죠. 결과물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짜 의미와 무게를 만들어내는 건 그 안에 담긴 의도, 고생, 그리고 정성입니다.

물론 모든 창작물이 무겁기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가벼움부터 무거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가벼운 것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도 아닙니다. 사실 수많은 밈(meme), 속보, 연예 이슈처럼 가벼운 콘텐츠에 기반한 경제도 존재하죠. 이런 것들이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단순히 움직임이 있다고 해서 그게 곧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회수 백만이 쌓여도 그게 곧 ‘무게’가 되는 건 아니죠. 가벼운 것들은 문화를 바꿀 수는 있어도, 우리 자신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창작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창작의 본질은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정말 뛰어난 작품은 관객이나 독자뿐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 자신도 변화시킵니다. 창업가는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만들고, 작가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다듬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우리는 무거운 것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런 무거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겁니다.

가벼운 것들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그게 모여서 진짜 무게감 있는 무언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창작자들이 처음에는 알고리즘에 휘둘리는 얕은 세계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누구나 더 무거운 무언가를 찾게 되죠. 짧은 콘텐츠에서 긴 콘텐츠로, 공개적으로 만드는 것에서 혼자만의 집중과 집착, 깊이 있는 작업으로 옮겨갑니다. 책, 영화, 앨범, 회사처럼 오롯이 하나로 서 있을 수 있는, 진짜 무게감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트윗이나 틱톡 영상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그게 하나의 무게감 있는 결과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결코 단단하게 굳어지지 않죠. 잘해봐야 정교하지만 금세 사라지는 눈송이 더미일 뿐입니다. 잠깐은 아름답지만,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립니다.

Substack(서브스택)은 분명 여러 장점이 있지만, 제대로 활용한다고 해도 창작의 ‘중간 무게’ 정도에 머무르는 플랫폼입니다. 작가들은 포스트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점점 더 묵직한 글의 아카이브를 만들어갑니다. 롱폼(long-form) 글이 더 빠르고 오래 바이럴되는 것도 긍정적이죠. 하지만 이 역시 작가들이 꿈꾸는 진짜 무게감에는 아직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뉴스레터를 브랜드와 비즈니스로 키운 성공한 Substack 작가들조차, 결국에는 단순히 글을 쌓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게 됩니다.

누구나 결국엔 정말 제대로 된, 단 하나의 무게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책, 선언문, 영화, 미디어 회사, 기념비-진짜 ‘걸작’이죠.

이런 걸 만드는 이유는 단순히 명예나 돈 때문만이 아닙니다. 덧없음(ephemerality)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기도 하고, 자신을 오래 남는 무언가에 단단히 묶어두면서도 동시에 자유를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작품은 자신뿐 아니라, 그것을 만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오래도록 남게 됩니다.

무게 있는 프로젝트야말로 창작자가 진짜로 만족을 느끼고, 오랫동안 창작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어떤 플랫폼도 이런 ‘무게감’을 온전히 제공해주지 못했습니다.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증폭을 위한 도구일 뿐, 창작자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역할은 하지 못하니까요.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 때, ‘라이트 모드’와 ‘헤비 모드’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라이트 모드는 빠르고 반복적입니다. 금방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금세 사라지는 작업 방식이죠. 빠른 실험, 가벼운 사이드 프로젝트, 끊임없는 포스팅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헤비 모드는 느리지만, 신중하고 의도적입니다. 때로는 세상과 단절된 채 몰입하는 ‘은둔자 모드’에 가깝죠.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올리는 깊이 있는 작업,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남는 진짜 무게감 있는 결과물이 바로 이 헤비 모드에서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무거운 것에 바로 도전합니다. 수십억 달러짜리 스타트업을 만들거나, 세상을 바꿀 책을 쓰거나, 시대를 정의할 앨범을 녹음하는 식이죠. 중간에 멈추지 않고 곧장 나아갑니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의 존재감을 잃지 않고 오래 남을 무언가를 만드는 겁니다. 무게감은 곧 영속성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무거운 것에 다가갑니다. 책을 쓰기 전에 에세이부터 써보고, 장편 영화 전에 단편을 만들어보고, 대형 제품을 내놓기 전에 프로토타입을 여러 번 만들어보는 식이죠. (때로는 진지한 제품을 만들기 전에 가벼운 ‘GPT 래퍼’ 같은 실험도 해봅니다.) 가벼운 작업의 장점도 분명 있습니다. 신선함을 유지하고, 반복을 통해 실력을 쌓으며, 결국 더 무거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점이든, 우리는 ‘무거운 것을 만들기 전’이거나 ‘만든 후’ 둘 중 하나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미 무게감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본 사람도 있고, 아직 그 전인 사람도 있죠. ‘무거운 것 이전’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탐색하고, 실험하고,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갑니다. 반면, ‘무거운 것 이후’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남들에게도 존중받으며,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쌓아갈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어낸 거죠. 이런 사람들은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집니다. (물론, 이 감각이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스스로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됩니다.

누구도 평생 라이트 모드에만 머무르고 싶어 하진 않습니다. 결국엔 누구나 자연스럽게 헤비 모드, 즉 진짜 무게감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게 되죠. 인생의 대표작은 반드시 무거운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트 모드와 헤비 모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그게 바로 창작의 핵심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무거움’이 꼭 ‘크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거운 것은 작을 수도 있고, 극소수만을 위한 것이거나 확장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밀도’입니다. 즉, 본질적이고, 의미 있고, 오래 남는 것-그런 게 바로 진짜 무거운 것입니다.

가벼운 것만 만들면, 스스로가 진짜 창작자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요즘은 누구나 자신을 ‘크리에이터’라고 부르죠.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본 타이틀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이름을 내세우는 모두가 진짜로 그 의미를 느끼고 있을까요? 정말 무게감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깊고 단단한 만족감을 그들도 알고 있을까요?

모두가 크리에이터라고 말하는 시대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가짜 창작자 콤플렉스(임포스터 신드롬)’를 만들어냈습니다. ‘크리에이터’라는 호칭만으로는 진짜 창작자가 될 수도, 그렇게 느낄 수도 없습니다. 오직 무게감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만 진짜 창작자가 되는 겁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단단히 서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본 사람은,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이 필요 없습니다. 손에 쥐어진 그 무게감이 모든 걸 증명해주고, 그 자체가 최고의 보상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거운 것을 만들 능력이 없는 게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아직 그런 것을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죠. 물론 가벼운 것에도 분명 장점은 있습니다. 가벼움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아무런 부담 없이 ‘그냥 뭐라도 해보라’고 속삭입니다. 이 시스템은 움직임 자체에 보상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고, 뱃지를 수집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그동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감정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많은 걸 만들어냈는데도, 정작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조용하고도 서글픈 허전함이죠. 왜 꾸준히 포스팅하다가 멈추면 허탈함이 몰려올까요? 그동안 쏟아부은 에너지가 한순간에 0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단순한 ‘움직임’일 뿐, 진짜 ‘무게’는 없었던 겁니다. 추진력만 있었지, 실질적인 내용은 비어 있었던 거죠. 도파민만 넘치고, 세로토닌은 거의 없으며, 옥시토신은 아예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요즘 크리에이터, 나아가 이 시대 전체가 겪는 딜레마입니다.

진짜 무거운 무언가를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도 진짜 창작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가벼운 것들은 결국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죠. 결과물은 많지만, 진짜 흔적은 거의 남지 않습니다. 뭔가를 계속 내놓긴 하지만, 쌓아올리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는 거죠. 스스로를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면서도, 과연 내가 만든 것 중에 한 달, 1년, 10년 동안 인터넷에서 사라져도 살아남을 만한 게 있냐고 자문해보면 답이 선뜻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 내일 당장 포스팅을 멈춘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하루하루를 위한 콘텐츠 생산은 자유도, 영향력도, 유산도 아닙니다. 그저 내 시간을 빌려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에 담긴 무게는 정말 중요합니다.

창작자란 본래 안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뭔가 진짜 의미 있고 묵직한 무언가를 만들 때까지, 늘 새로운 지평선을 좇으며 살아가죠. 우리는 평생을 바쳐, 스스로의 야망을 붙잡아주고 마음을 진정시켜줄 ‘무게 있는 이불’ 같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애씁니다.

물리적인 세계에서 ‘무게’는 손에 잡히는 실제감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들어 우리는 오프라인, 즉 현실 세계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 가치를 느끼는 일을 소홀히 해왔지만, 사실 이곳이야말로 더 신경 쓰고 창작해야 할 공간입니다. 비록 확장이나 스케일업이 쉽지 않더라도, 손으로 직접 만지고, 형태와 부피를 가진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는 아직도 엄청난 가치와 잠재력이 숨어 있습니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본질적으로 ‘무게감’을 느끼기가 훨씬 어렵고, 그 무게를 오래 붙잡아 두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세상일수록, 진짜 무거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더욱 희귀해지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게감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요즘 무슨 일 하고 있어?”라고 물을 때, 사실 그 말 속에는 “너의 최종 목표는 뭐야?”라는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질문을 정말 좋아합니다.

저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게감 있는 것을 만듭니다.


원문: Make something he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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