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뜻 보면 지난 2주간의 두 가지 큰 뉴스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10월 9일, 중국은 거의 모든 기술 제품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수출 통제를 대폭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10월 20일, Amazon Web Services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리전인 US-East-1이 DNS 장애를 일으켜,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수많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멈춰 버렸다.
하지만 이 두 사건 사이에는 공통된 본질이 있다. 그것은 인터넷과 국제무역 모두에 대해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던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며, 이론 속에서 그려지던 세계보다 실제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US-East-1과 복원력의 종말 (US-East-1 and the End of Resiliency)
인터넷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인터넷의 시초인 ARPANET의 첫 목표는 원격 컴퓨팅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었지만, 더 널리 알려진 목적은 ‘핵 공격에도 살아남는 네트워크 구축’이었다. 그 철학은 핵심적인 인터넷 기술인 패킷 스위칭(packet switching)을 탄생시켰다. 즉, 인터넷의 하나의 노드가 손상되어도 전체가 멈추지는 않아야 했다.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이번 주에 벌어진 일을 보면, 인터넷의 단 하나의 노드인 US-East-1이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 그것이 멈추자 마치 인터넷 전체가 고장 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규모(scale)와 관성(inertia) 때문이다. 후자부터 보자. 1990년대의 버지니아 북부는 전력과 토지가 싸고 안정적이었으며, 자연재해 위험도 낮았다. 게다가 워싱턴 D.C. 근교라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미국 동부의 주요 인터넷 교환 지점(IX)이 자리 잡았고, 미국 서부와 유럽의 중간 지점이기도 했다. 이런 조건은 당시 최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였던 AOL을 이 지역으로 끌어들였고, 그 결과 버지니아 북부는 데이터센터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렇게 축적된 인프라 덕분에 AWS가 2006년 첫 데이터센터를 지을 곳으로 이 지역을 선택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데이터센터는 US-East-1으로 불리게 되었고, 처음부터 가장 큰 용량, 가장 다양한 인스턴스 유형, 그리고 가장 먼저 새로운 기능이 적용되는 리전으로 발전했다. 그 중요성은 너무 커서 AWS 자체 시스템조차 US-East-1에 여러 dependency를 갖고 있다는 점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 또한 개발자들이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튜토리얼과 템플릿의 기본값(default region)으로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 “US-East-1을 쓰다 잘못될 리는 없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였던 셈이다 — 적어도 이번 사태 전까지는.
한편 Amazon은 지난 20여 년 동안 AWS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기업들이 자체 서버를 구축하고 유지하느라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력한 논리를 펼쳤다. 설령 비용이 비슷하더라도, 언제든 필요한 만큼 유연하게 확장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능력은 자본 비용을 운영비로 전환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설득했다.
이 주장은 단지 설득력 있는 논리일 뿐 아니라,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했다. AWS의 재무 실적이 처음 별도로 공개되던 시점을 ‘AWS의 상장(The AWS IPO)’이라 불렀는데, 그때 사람들은 처음으로 클라우드 비즈니스의 진짜 수익성을 목격했다. 초기 10년간의 일반적인 인식은 ‘아마존처럼 미세한 마진(margin)을 견딜 수 있는 회사만이 클라우드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AWS가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규모가 커질수록 그 수익성도 커졌다.
그리고 그 방대한 규모의 중심에는 언제나 US-East-1이 있었다. 가장 많은 인스턴스를 보유했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저렴했으며,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클라우드로 옮겨갈 때 가장 먼저 그곳을 선택했다. 물론 이상적인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는 여러 리전을 활용해 중복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늘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특히 DNS와 같은 복잡한 네트워크 구조가 개입되면, 어디서든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질 수 있다.
결국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인터넷은 이론상 복원력을 제공하는 구조로 설계되었지만, 동시에 데이터를 ‘어디에나’ 저장하고 애플리케이션을 ‘어디서나’ 돌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가장 쉽고, 가장 저렴한 장소’를 선택했고, 그 결과 그 장소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며 더 싸고 더 편해졌다. 이 집중은 다시 집중을 낳았다. 그 결과, 이번에 우리가 목격했듯이, 오늘날의 인터넷은 20년 전보다 훨씬 덜 복원력 있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그때는 데이터센터가 자주 다운되었지만, 그 피해는 특정 고객 몇 명에게만 국한됐다. 하지만 이제는 버지니아 북부의 하나의 데이터센터만 멈춰도 전 세계 수많은 서비스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희토류와 중국 의존(Rare Earths and China Dependency)
희토류(rare earths)는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데이터 패킷(packet)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광산을 개발하고, 산더미 같은 흙더미 속에서 극미량의 광물을 분리한 뒤, 이를 다시 처리하고 정제해야 비로소 쓸모 있는 재료가 나온다. 사실 이런 과정은 희토류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물리적 제품의 기본 구조다. 원자재를 확보하고, 이를 정제하고 가공하고, 부품을 만들고, 완제품으로 조립한 뒤, 창고와 매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집이나 사무실에 도달한다.
이 과정이 워낙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산업화를 이룬 국가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국가들은 비슷한 경로를 걸으며 비슷한 기술 역량을 발전시켰다. 그 시절에는 ‘지리적 조건’이 산업화의 핵심 변수였다. 그래서 전형적인 예로, 거의 모든 나라가 자국의 자동차 회사와 화학 기업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각국은 원자재를 찾아 식민지를 개척했지만, 산업 기반(infrastructure)의 중심은 항상 ‘본국’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종류의 기술이 이 구조를 바꿔놓았다. 2016년 The Brexit Possibility에서 다룬 바와 같이,
1970년대를 전후해 세 가지 기술 혁신이 ‘세계화’의 의미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 1963년, Boeing은 미국 본토에서 아시아까지 논스톱 운항이 가능한 최초의 제트 여객기 707-320B를 만들어냈고, 1970년에는 747이 그 노선을 일상적으로 만든다.
- 1964년에는 미·일 간 첫 태평양 횡단 전화 케이블이 완공되어, 이후 몇 년에 걸쳐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 1968년에는 ISO 668 표준화가 이루어지며, 해상 운송 효율을 폭발적으로 높인 컨테이너 운송 체계가 정착됐다.
이 세 가지 기술이 결합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무역이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미국(혹은 유럽, 일본 등)에서 제품을 설계하고 제조한 뒤 다른 나라로 판매했다면, 이제는 그 구조가 완전히 뒤집혔다. 다국적 기업들은 본국에서 제품을 설계하고, 그 도면과 사양을 해외 공장으로 전송한 뒤, 완제품을 다시 자국 시장으로 들여오는 방식으로 변했다. 여기에 1978년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극적으로 낮아진 아시아의 인건비가 더해지며, 이 구조는 엄청난 수익성을 갖게 되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일은, 인터넷 세계의 US-East-1 의존이 만들어낸 그 “규모의 집중”과 “관성”이 현실 산업에서도 그대로 반복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중심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통신과 운송 비용이 급감하자, 전 세계의 산업이 값싼 인건비, 느슨한 환경 규제, 그리고 공장 유치를 반기는 정부를 찾아 중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규모와 관성’이 구조적으로 굳어졌다. 모두가 중국에 공장을 짓고 있으니, 나 역시 그곳에 짓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고, 부품 공급망이 이미 중국에 집중되어 있으니 최종 조립 역시 자연스레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패턴은 희토류 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은 희토류를 ‘전략적 핵심 자원’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전략 품목으로 육성했으며, 동시에 미국은 자국 내 희토류 채굴과 정제를 점점 더 불가능한 산업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희토류의 분리, 제련, 정제에서 최종 제품 사용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이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미국이나 호주, 일본 등이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려 시도할 때마다, 중국은 대규모 물량을 저가로 시장에 풀어 가격을 폭락시켜버렸고, 그로 인해 해당 프로젝트들은 모조리 좌초되었다. 그러나 최종 소비자나 기업 입장에서는 상관없었다. 모두가 중국에서 더 싸고 손쉽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인터넷에서 모두가 US-East-1을 쓴 것처럼, 제조업 세계에서는 모두가 중국을 택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고전적 자유무역론’의 문제점 중 하나로 학습 곡선(learning curve)의 중요성을 무시한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글로벌 경제 재편에서 가장 큰 패배자는 미국 노동자들이었다. 서비스업 일자리는 늘었지만, 과거처럼 ‘제조업 일자리’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반면 중국은 단순히 인건비가 싸다는 이유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꾸준히 제조 역량을 축적하며 기술 곡선을 타고 올라갔다. 반대로 미국은 그 학습 곡선을 스스로 버렸다.
그 결과가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스티브 잡스』 전기 속 일화로 나타난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서 잡스는 미국 내 엔지니어 부족 문제를 호소하며, “공학 학위를 딴 외국인 학생에게는 미국 체류 비자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그건 드림법안(Dream Act)과 연계되어야 한다”며 정치적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이에 잡스는 “대통령은 매우 똑똑하지만, 항상 왜 일이 안 되는지만 설명한다. 답답하다”고 회상했다.
잡스는 추가로 이런 말을 했다. “미국에는 700,000명의 공장 노동자가 중국에서 아이폰을 만들지만, 그들을 지원할 30,000명의 현장 엔지니어를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다. 이들은 박사 같은 천재가 아니라, 단순히 숙련된 제조 기술 인력이다. 공업학교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충분히 길러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엔지니어들을 양성할 수 있다면, 공장을 미국에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이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후 참모들에게 “우리가 그 3만 명의 엔지니어를 양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잡스의 생각이 원인과 결과를 뒤집고 있다고 본다. 미국에 3만 명의 제조 기술 엔지니어가 없는 이유는, 그들을 위한 일자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 — 특히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이후 관세 철폐를 통해 만들어진 자유무역 시스템 — 속에서 그런 일자리는 경제적으로 유지될 수 없게 설계되었다. 그러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부활 정책’(tariff)에 대해 찬반은 갈릴지라도, 최소한 “지난 80년간의 경제 구조를 되돌리려 한 시도”라는 점은 명확하다.
잡스의 주장은 결국 자사인 애플에 유리한 관점이기도 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애플이 미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비용 때문만이 아니라, ‘능력(capability)’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능력은 40년에 걸친 아시아 중심의 생산 생태계 위에서 길러진 것이고, 미국은 그 역량 축적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러나 애플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거대한 공급망이 중국을 중심으로 완성되었고, 애플은 이를 통해 믿을 수 없을 만큼 품질이 뛰어난 제품을 대규모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플과 중국의 이야기가 특별히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바로 ‘미국이 어떻게 중국에 의존하게 되었는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존 구조는 고전적인 자유무역론(free trade theory)의 또 다른 결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론상으로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공급망을 다양화시켜 어느 한 지역의 리스크를 줄여주고 복원력을 높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자유무역은 복원력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파괴했다.
애플 CEO 팀 쿡은 과거 그 유명한 “팀 쿡 독트린(The Tim Cook Doctrine)”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핵심 기술은 직접 소유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시장에만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냉정히 말하자면, 애플이 보유한 가장 중요한 기술 — 즉, 팀 쿡 자신이 직접 설계한 기술 — 은 그 어떤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나 칩 설계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수익성 높은 제품을 ‘천문학적 규모로, 완벽하게 생산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애플이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중국의 손에 달려 있다.
이 상황은 희토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산업 공급망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희토류 자체는 사실 ‘희귀한 자원’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40여 년간 중국이 만들어온 규모의 경제와 산업적 관성 덕분에 세계는 완전히 중국 중심의 의존 구조에 갇혀버렸다. 즉, 미·중이라는 지정학적 경쟁 구도 속에서도, 미국은 자국 산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경쟁자의 손에 맡긴 셈이다.
결국 결과는 똑같다. 통신과 교통의 비용을 낮추는 데에 성공한 기술 혁신 — 이번에는 데이터가 아니라 ‘물질(atom)’의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 — 은 복원력을 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무너뜨렸다. 비용 절감을 중시한 ‘규모의 효율성’은 예상과 달리, 전 지구적 취약성을 만들어냈다.
코로나와 정보 복원력(COVID and Information Resiliency )
복원력의 붕괴를 극복한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도 있다. 다만 미리 말하자면, 이 부분은 다소 논쟁적일 수도 있다. 이번에는 인터넷의 가장 오래되고 대중적인 콘텐츠 형태인 ‘정보(information)’의 현재 상태에 관한 이야기다.
2020년 3월, 나는 [Zero Trust Information]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인터넷이 ‘주류 담론을 거스르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 얼마나 과소평가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표적인 예로 들었던 것은 시애틀 플루 연구(Seattle Flu Study)였다. 이 연구는 코로나가 미국 내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2020년 초 일찌감치 밝혀냈고, 이는 당시 CDC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의 나의 낙관은 시기상조이거나 틀린 것이었다. 그 이후 몇 주, 몇 달, 그리고 몇 년에 걸쳐 벌어진 일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정보 탐색과 전파 분야에서 가장 큰 실패 사례 중 하나로 남았다. 나는 2020년 3월 2일 [Update 글]을 통해 이미 여러 핵심 정보를 정리했는데, 그 안에는 “코로나는 결국 모두에게 전파될 것이며, 초기에 알려진 것만큼 치명적이지 않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들이 사회적으로 ‘공인된 상식’이 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고, 지금도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그 두 가지 사실만이라도 초기에 널리 받아들여졌다면, 그 이후 몇 년간의 대응은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연 면역(natural immunity)은 실제로 존재한다”거나, “공기 중 전파가 실내에서는 피할 수 없지만 실외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전달되지 못했다. 문제는 2020년 무렵 인터넷의 정보 유통 구조가 완전히 ‘중앙집중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Facebook, Twitter, YouTube — 이 세 플랫폼이 사실상 정보 유통의 문을 쥐고 있었고, 셋 모두 “공식적으로 승인된 담론의 경계” 밖의 이야기를 철저히 막았다. 그 결과, 내 3월 2일 글이 만약 그 플랫폼에 게시되었다면, 당시에는 아마 계정 정지 조치를 당했을 것이다. 요컨대 2020년의 우리는 ‘정보의 복원력(information resiliency)’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그 대가를 모두가 치렀다.
그런데 그 후, Elon Musk가 Twitter를 인수했다.
이후 일어난 변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Twitter가 ‘진실의 원천(fountain of truth)’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이전보다 확대되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Musk의 인수와 정치적 행동이 트리거가 되어 Threads, Mastodon, BlueSky 등 다양한 대안 플랫폼들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각 플랫폼은 서로 다른 성격, 문화, 규범을 가졌고, 그 자체로 상이한 사회적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 중 어느 하나가 ‘진실의 독점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런 독점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만약 오늘날 또 다른 코로나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아마 ‘플랫폼 X(옛 트위터)의 진실’, ‘Threads의 진실’, ‘Mastodon의 진실’, ‘BlueSky의 진실’이 각각 존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진실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문제’가 아니라 ‘특징(feature)’이다. 그것이 바로 진짜 복원력이다. 다양한 관점이 공존할 때, 우리는 오히려 더 빨리 진실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코로나 시기보다 훨씬 빠르게 말이다.
복원력의 대가 (The Costs of Resiliency)
지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트위터 인수에 과도한 금액을 지불했고, 이후 단문형 커뮤니케이션의 독점 지위를 잃으면서 그 가치는 더욱 하락했다. 실제로 트위터(현 X)의 기업 가치는 인수 당시보다 80~90%가 증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집단적인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결과였다고 본다.
US-East-1 의존도를 해소하는 일 역시 비슷한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 스택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한 리전 또는 한 클라우드 서비스 장애가 전체 비즈니스를 마비시키지 않도록 진짜 복원력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비용을 감수할 의지가 필요한 일일 뿐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중국 의존 문제에서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비트(bits)’와 ‘원자(atoms)’의 차이는 매우 크며, 그만큼 비용도 훨씬 막대하다. 지난 수십 년간의 규모의 경제와 학습 곡선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운송과 통신 비용이 낮아지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복원력의 붕괴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곳에서 의도적으로 비용을 높이는 것뿐이다. 그 비용이 인위적이거나 비효율을 초래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 데이터(비트)를 옮기는 데 발생하는 비용을 우리가 기꺼이 감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 물질(원자)을 옮기는 데 발생하는 훨씬 크고 장기적인 비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것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분명히 알아야 한다. ‘글로벌 효율성(global efficiency)’을 추구하는 대가로 우리가 치르고 있는 진짜 비용은 바로 국가적 복원력(national resiliency)이라는 사실을. 효율성을 좇으면서 복원력을 잃었고, 그 상태에서 되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 일정 수준의 ‘가치 파괴(value destruction)’를 감내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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