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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결정이 사실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이유

Selectorate Theory(선택 집단 이론)로 권력 구조를 이해하기

겉보기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결정이 사실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이유
선택 집단 이론

내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하다고 느꼈던 사고 방식 중 하나는, 경영대학원이나 테크 블로그가 아니라 정치학에서 나왔다. 바로 Bruce Bueno de Mesquita가 주로 발전시킨 ‘Selectorate Theory(선택 집단 이론)’인데, 이 이론은 권력의 역학을 놀라울 만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독재 국가뿐 아니라 대기업, 투자자 집단, 그리고 혼돈의 스타트업 세계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꿰뚫어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이 개념들을 제대로 알게 된 건 『The Dictator’s Handbook: Why Bad Behavior is Almost Always Good Politics』(『독재자의 핸드북: 왜 나쁜 행동이 정치에서는 언제나 통하는가』)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친절하게 쓰였다. 셀렉터레이트 이론의 핵심은 이 책뿐 아니라,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는 『The Logic of Political Survival』 같은 학술서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글보다 시각적인 자료가 더 편하다면, CGP Grey가 주요 내용을 잘 정리한 유튜브 영상이 있고, 넷플릭스 시리즈 ‘How to Become a Tyrant’(독재자가 되는 법)에서는 이 이론에서 다루는 여러 전략들을 실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핵심 개념: 결국 권력 유지가 전부다

이 이론의 본질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모든 리더, 즉 CEO든, 총리든, 스타트업 창업자든, 결국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자리를 지켜줄 핵심 지지자 집단, 즉 ‘핵심 세력(Winning Coalition)’(또는 ‘Essentials’)에 의존하게 된다. 이들은 리더가 자리를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이 승리 연합은 더 큰 집단인 ‘선택 집단(Selectorate)’(또는 ‘Influentials’)에서 뽑혀 나온다. 선택 집단이란, 기본적으로 리더를 선택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잠재적 영향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마법의 비율: W/S

여기서 핵심적인 통찰이 하나 있다. 바로 ‘핵심 세력(W)’의 크기와 ‘선택 집단(S)’의 크기 비율이 리더의 행동 방식과 자원 분배 전략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 승리 연합이 작은 경우(낮은 W/S 비율):
    리더가 소수의 핵심 지지자만 필요로 하는 상황(예를 들어, 독재자가 몇몇 장군만을 신경 쓰면 되는 경우)에는, 그 소수에게 사적인 이익-즉, 직접적인 금전적 보상, 특별한 권한, 맞춤형 보너스, 특정 프로젝트 등-을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소수의 충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전체의 이익보다 이들의 만족이 우선시된다.
  • 승리 연합이 큰 경우(높은 W/S 비율):
    반대로, 리더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예를 들어, 민주주의 지도자가 수백만 표를 얻어야 하는 경우)에는,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공재-회사의 전반적인 성과, 공정한 정책, 널리 공유되는 복지 등-를 제공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이럴 때는 소수에게만 특혜를 주는 방식은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정치 영역을 넘어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선택 집단 이론

이 프레임워크가 정말 놀라운 점은, 한 번 시각이 열리고 나면 세상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대기업과 조직 내 역학:
    대기업 안에서 왜 어떤 CEO가 특정 이사회 멤버나 소수의 영향력 있는 임원들에게만 유독 신경을 쓰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바로 CEO의 핵심 세력이다. CEO를 지지하는 이 핵심 세력에게 자원과 기회가 몰리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전략적 결정들도, 이 핵심 세력의 충성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런 내부 역학, 즉 누가 누구의 지지가 필요한지에 따라 조직의 외부와의 관계 방식까지 영향을 미친다.
    • 엔터프라이즈 세일즈(Enterprise Sales) 사례:
      대기업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할 때, 담당자는 단순히 회사 전체의 관점에서 제품의 객관적인 장점만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자신만의 내부 정치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담당자에게도 상사(선택 집단이나 핵심 세력의 주요 인물)가 있고, 반드시 만족시키거나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내부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이럴 때 선택 집단 이론(Selectorate Theory)으로 접근하면, 성공적인 영업의 핵심은 내 제품이 그 담당자가 조직 내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솔루션을 도입하면 그 담당자의 상사가 좋은 평가를 받는가? 아니면 담당자의 핵심 동료가 겪고 있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주어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가? 혹은 담당자 본인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안겨주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가?
      이처럼 구매 결정 과정을 단순히 제품의 기능이나 전체적인 ROI만이 아니라, 담당자가 자신의 핵심 세력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왜 ‘가장 좋은’ 제품이 아니라 내부 정치적으로 가장 유리한 제품이 선택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조직 내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필요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장 잘 충족시키는 제품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 투자자(VC) 관계:
    벤처캐피털(VC)에서 General Partner(GP)와 Limited Partner(LP) 사이의 관계를 떠올려보자. LP들은 선택 집단에 해당하고, 그 중에서도 지속적인 투자가 꼭 필요한 핵심 LP들이 바로 GP의 핵심 세력이 된다. 그래서 때때로 VC들이 특정한 성공 신호-예를 들어, 빠른 밸류에이션 상승처럼 핵심 LP들에게 가장 어필할 만한 지표-를 유난히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GP 입장에서는 자신의 핵심 세력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 스타트업의 역동성:
    이 이론은 스타트업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굉장히 유용하다.
    • 초기 단계:
      창업자는 극소수의 핵심 세력에 의존한다. 공동 창업자, 초기 핵심 엔지니어, 리드 투자자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너무 좁은 시각으로 보일 수 있는 지분 분배나 전략 결정이 실제로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 된다.
    • 성장 단계:
      회사가 커지면 선택 집단의 범위도 넓어진다. 창업자나 CEO는 이제 더 많은 핵심 세력을 포용해야 하고, 전문 경영진(‘Soldiers’)을 영입하거나 조직 구조를 공식화하는 등, 초기 멤버들과의 개인적 신뢰(‘사적 이익’)만으로 회사를 이끌 수 없게 된다. 대신,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나 시스템(‘공공재’)을 도입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이 전환 과정은 스타트업에게 큰 도전이 된다.
    • 내부 정치:
      각 리더들이 자신만의 핵심 세력을 구축하면서 자연스럽게 파벌이 생긴다. 누가 누구의 지지가 필요한지 파악하면, 스타트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역학 관계를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강력한 사고 방식

나에게 선택 집단 이론(Selectorate Theory)은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각자의 인센티브 구조를 이해하라는 의미다. 이 이론은 표면적인 명분이나 의도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행동을 이끄는 근본적인 구조를 꿰뚫어볼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사고 방식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합리적인 사람들이 왜 때로는 한쪽에서 보기엔 최선이 아닌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밖에서 보면 비효율적이거나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선택도, 사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핵심 세력의 이익을 우선시한 결과로, 충분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이 이론을 알면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고, 숨겨진 동기를 파악하며(영업, 경영, 투자 등 다양한 상황에서),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훨씬 효과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 특히 스타트업처럼 변화가 많은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아이디어가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독재자의 핸드북: 왜 나쁜 행동이 정치에서는 언제나 통하는가』를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쉽고 명확하게 핵심을 설명해준다. 아니면 아래에 소개한 CGP Grey의 영상 ‘The Rules for Rulers’를 통해 간단하게 핵심 내용을 접해봐도 좋다. 이 이론을 한 번 이해하고 나면, 주변의 조직과 권력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른다.


원문: Why That Seemingly Irrational Decision Makes Perfect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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