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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행동이 곧 당신이다

당신의 행동이 곧 당신이다

현대 미국인의 자아는 두 명의 계몽주의 사상가에 의해 가장 잘 정의된다. 이들은 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장 자크 루소는 내면의 자아, 즉 본질적으로 선한 핵심이 환경에 의해 지속적으로 배반당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세상은 우리를 타락시키며, 우리는 원래 순수하지만 사회와 의무, 기대가 진정한 우리 자신을 멀어지게 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다르게 보았다. 그에게는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다만 선행을 하는 사람과 악행을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덕목은 본질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현대 미국은 이 두 가지 사상을 모두 품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오간다. 용서를 구할 때는 루소의 ‘선한 의도였다’를, 책임을 물을 때는 프랭클린의 ‘네가 한 일을 보여 달라’를 인용한다. 이 둘은 거의 상호 배타적인 철학임에도, 실제에서는 둘 다 우리의 의도와 야망을 모두 만족시켜 완벽히 공존한다.

하지만 이들 중 현실에서 확장 가능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될 때까지 흉내 내라”는 말은 흔히 피상적이라 치부되지만, 사실 프랭클린의 진리에 가깝다. 충분히 오래 행동을 흉내 내면 진짜가 된다. 믿음의 진실성보다 행동의 반복이 성격을 만든다. 반복해서 하는 행동이 곧 당신의 모습이 된다.

루소의 철학은 끝없는 자기성찰을 권하고, 프랭클린은 진보를 권한다. 전자는 당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후자는 당신이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에 집중한다.

나는 프랭클린의 모델이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우주적인 진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당신에게 행동할 수 있는 주체성을 주기 때문이다. 당신은 항상 감정을 바꿀 수는 없지만 다음 행동은 언제든 결정할 수 있다.

“위대한 사람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 아놀드 글라소


원문: You Are How You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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