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슬아슬한 세상
흔히들 “미래를 알려면 먼저 과거를 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를 보아도 미래는 알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세상 모든 일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혼합되고, 그 결과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운과 우연에 이토록 취약한 세상에서 나는 두 가지를 늘 기억하려 애쓴다. 하나는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토대로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려 애쓰는 또 다른 하나는 열린 상상력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즉 현재 상황을 뛰어넘어 늘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돈과 마찬가지로 사건도 복리 효과를 낸다. 그리고 복리 효과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미약하게 시작된 뭔가가 나중에 얼마나 거대해질 수 있는지를 처음에는 직관적으로 느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것, 리스크
언제나 가장 큰 리스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리스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므로 아무도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리스크가 현실이 됐을 때 피해가 엄청나기 마련이다.
“당신이 모든 시나리오를 남김없이 고려했다고 생각한 후에 남는 것이 리스크다.” 리스크의 정확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비한 후에 남는 것. 리스크는 보이지 않는다.
만일 가장 큰 리스크가 뭔지 안다면 뭔가 대비책을 세울 테고, 대비책을 세우면 그 일은 덜 위험한 것이 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은 곧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리스크를 결코 완전히 정복할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지식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정확한 예측이 있어야 대비를 하겠다고 생각할 때 리스크는 위험한 것이 된다. 오로지 예측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를지라도 리스크가 언제고 반드시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편이 낫다.
기대치와 현실
행복은 기대치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는 세상에서 인생에 필요한 기술 중 하나는, 지향하는 기준선을 자꾸 바꾸지 않는 것이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 목표는 쉽게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 이는 언제나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남들과 비교해 평가한다. 주변 사람들이 잘살게 되면 사치품으로 간주되던 것이 놀랍도록 짧은 기간 내에 필수품이 된다.
객관적 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대개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내가 삶에서 무엇을 얻을 자격이 있는지,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부와 행복은 두 가지 요소로 이뤄진 등식임을 항상 기억하자. 두 가지란 당신이 ‘가진 것(현실)’과 ‘기대하는 것(기대치)이다. 이 둘은 똑같이 중요하다. 따라서 가진 것을 늘리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을 쏟으면서 기대치를 관리하는 데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특히 우리가 훨씬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닌 기대치이므로 더욱 그렇다.
인간, 그 알 수 없는 존재
독특하지만 훌륭한 특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항상 독특하지만 훌륭하지 않은 특성도 함께 갖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한다. 그래서 존경의 대상으로 삼을 인물을 잘못 판단하고, 그에게서 우리가 기대한 것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엄청난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은 엄청난 실패를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곤 한다. 어떤 사람이 성공한 기업 또는 위대한 국가의 리더가 될까? 단호하고, 낙관적이고, ‘노(No)’라는 답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무조건 확신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무모한 열정으로 도를 넘어서고, 욕심에 휩싸이고, 남들 눈에는 뻔히 보이는 리스크를 무시할까? 단호하고, 낙관적이고, ‘노’라는 답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무조건 확신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을 택하든 각자의 방식으로 당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롤모델을 찾으려거든 그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닮고 싶은 것인지, 특정한 측면을 닮고 싶은 것인지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확률과 확실성
인간의 흔한 행동 특성 하나는 불확실하고 확률론적인 세상에 살면서도 확실성을 애타게 원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확실성이 드물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최선의 선택은 자신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들은 똑똑해도 틀린 판단으로 나쁜 결과를 맞을 수 있고 멍청해도 옳은 판단으로 좋은 결과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운과 리스크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의 예측이 옳았는가, 틀렸는가?” “예스인가, 노인가?” 확률은 미묘한 차이와 다양한 수준의 가능성을 고려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이분법적 결과에만 주목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를 바라보는 정확한 관점을 원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확실성이다.
예측이라는 분야에서 주로 이뤄지는 활동은 사람들을 미래가 어덯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유용한 수치 정보를 주는 것보다 확실성을 제공해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더 낫다. 그렇기 때문에 확률을 토대로 사고하는 일이 드문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고통스러운 결과를 겪게 된다면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확률 따위는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늘 경계하고 집중해야 할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치명적인 리스크다.
뛰어난 스토리가 승리한다
뛰어난 스토리가 승리한다. 뛰어난 아이디어나 옳은 설명, 또는 합리적인 이론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공감을 끌어내는 스토리를 들려주는 사람이 대개 성공한다.
완벽한 세상에서라면 정보의 중요성이 그 정보 전달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은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감정에 쉽게 지배당하고, 복잡한 정보가 마치 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이해하기 쉬워지기를 원한다.
당신이 무언가의 미래를 가늠하고자 할 때는 그것의 이론적 확률 이상을 봐야 한다. 그 확률에 관한 스토리도 같이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예측 방정식에서 대단히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던져보라. 중요한 질문이다. 맞는 말을 하고 있지만 스토리텔링이 형편없어서 당신이 귀 기울이지 않게 되는 누군가가 있는가?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영리한 마케팅의 결과에 불과한 것은 무엇인가?
통계가 놓치는 것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일은 위험하다. 오히려 그 반대가 옳다.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중요한 힘들은 측정하거나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유용성이나 이윤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이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경제와 관련한 수많은 행동 및 의사결정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결국 인간의 욕구와 감정이다. 때때로 그러한 감정 요인을 분석하거나 예측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불합리성과 혼란, 골치 아픈 인간관계, 불완전한 인간들로 들끓는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평화가 혼돈의 씨앗을 뿌린다
안정과 번영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은 결국 우리를 불안정과 혼돈으로 데리고 간다.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때 상황은 가장 위험해질 수 있다.
더 많이, 더 빨리
모든 일에는 적절한 규모와 속도가 있다. 그 선을 넘으면 문제가 생긴다.
투자의 역사를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주식은 장기적으로는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만, 보유자가 빨리 수익을 내려고 하면 가혹한 손실을 안겨준다.
“창의성 발현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조급함이다. 중간 과정을 신속하게 끝내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결과물을 빨리 내놓고 싶은 그 불가피한 욕망 말이다.”
사랑이든 일이든 투자든,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이 두 가지가 있어야 가치 있는 뭔가가 된다. 인내심과 희소성이다. 인내심을 지녀야 그것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고, 희소성이 있어야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다.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
똑같은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도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잠재력 발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큰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대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상황, 해결책 발견에 미래가 달려 있어서 빨리 행동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는 상황이다.
고통은 평화와 달리 우리의 집중력을 발휘시킨다. 늑장과 망설임을 허용하지 않는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우리의 턱밑에 들이밀어 당장 그리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해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두려움과 고통, 역경은 긍정적 감정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강력한 동기 부여 요소다. 이것은 역사가 주는 큰 교훈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결국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을 준다. ‘어떤 삶을 원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라.’
과거의 고통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좋은 것들을 낳은 토대이며, 현재의 고통은 미래에 누릴 것들을 위한 기회의 씨앗이다.
비극은 순식간이고, 기적은 오래 걸린다
좋은 일은 작고 점진적인 변화가 쌓여 일어나므로 시간이 걸리지만, 나쁜 일은 갑작스러운 신뢰 상실이나 눈 깜짝할 새에 발생한 치명적 실수 탓에 일어난다.
오랫동안 혁신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은 탓에 비관론이 득세하곤 한다. 하지만 대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혁신을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성장과 발전은 언제나 그것을 지연시키는 힘이나 장애물에 맞서 싸워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싸우고, 새로운 사업 모델은 시장의 기존 주자와 싸우고, 초고층 빌딩이 올라가려면 중력과 싸워야 한다. 언제나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역풍이 존재한다.
사소한 것과 거대한 결과
대부분의 재앙은 일련의 작은 리스크가 쌓이고 증폭되어 거대한 뭔가로 변할 때 일어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놀라운 성공이나 성취도 작고 하찮은 뭔가가 쌓여 특별한 것으로 변할 때 일어난다.
복리 효과에 숨겨진 수학을 이해한다면, 당신이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최고 수익률을 달성할까?”가 아니라 “내가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수익률이 얼마일까?” 이다.
희망 그리고 절망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모두를 지혜롭게 다루기는 꽤 어렵다. 비관론은 낙관론에 비해 지적인 관점에서 더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들리므로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또 리스크에 미리 대비하게 하므로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낙관론도 똑같이 중요하다. 당장은 상황이 암울해 보일지라도 앞으로 분명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단단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일부터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부분에서 꼭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발전을 위해서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공존해야 한다.
합리적 낙관론자는 인간의 현실이 언제나 문제와 절망과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런 장애물도 결국엔 발전을 막을 수 없다고 믿으며 낙관적 시각을 유지한다.
어떤 영역에서든 장기적인 성공을 누릴 만큼 충분히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문제나 위험을 해결하고 살아 남아야 한다. 투자든 일이든 인간관계든 마찬가지다. 비관론자처럼 저축하고 낙관론자처럼 투자하라. 비관론자처럼 대비하고 낙관론자처럼 꿈꾸라.
완벽함의 함정
생각이 필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사실상 일의 시작과 끝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없다. 따라서 머리를 비우고 느긋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두지 않고 줄곧 책상에 앉아 일만 하면 효율성이 더 떨어진다.
정확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큰 그림을 보여주는 원칙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다. 정확성보다는 원칙이 더 중요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측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면 당신의 시간과 자원을 다른 곳에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더 완벽해지려 할 수록 여러 면에서 더 취약해짐을 잊지 말자.
모든 여정은 원래 힘들다
이는 인생에 꼭 필요한 능력 중 하나다. 고통을 피해갈 쉬운 해결책이나 지름길부터 찾기보다는 필요한 때에 고통을 참아내는 능력 말이다.
우리는 빠르고 쉬운 길에 혹하기 쉽다. 고생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그런 길은 거의 없다.
당연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법칙이 있다. 목표로 삼을 가치가 있는 것 중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비용이 따르며, 대개 그 비용은 잠재적 보상의 크기와 비례한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다. 문제를 완전히 없애려고 하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나쁜 것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이 완벽하게 없애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안다.
성가신 문제나 불편함을 얼마만큼 견디는 것이 최선인지 판단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이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깨닫지 못한다.
장기적 성공과 발전의 연료가 되는 것은 인내심이다.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묵묵히 견디는 것은 결점이 아닌, 적정한 수준의 불편함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장점이다.
계속 달려라
경쟁 우위를 얻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을 잃지 않는 일이다.
일단 당신이 경쟁 우위를 갖게 되면, 당신을 그것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온갖 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성공은 고유의 중력을 갖고 있어서 세상의 관심과 기대치, 때로는 시기와 비판을 끌어당긴다.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계속 달려야 하는 것’, 그것이 진화의 원리다. 삶에서 대부분의 것도 그렇지 않을까? 비즈니스도? 제품도? 일도? 국가도? 인간관계도? 맞다. 전부 그렇다.
미래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우리는 여러 혁신이 상호작용하고 결합하면서 어떤 결과에 이를지 모르는 탓에, 그저 속 편하게 최고의 시절은 과거라고 결론 내리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나 혁신의 잠재력은 과소평가한다.
보기보다 힘들고, 보이는 것만큼 즐겁지 않다
사람들이 나의 특별하지 않은 모습과 못난 구석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매우 쉽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세일즈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공들여 만든다는 사실도 의미한다. 그렇게 만든 이미지는 자신을 남들에게 납득시키고 어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누군가를 실제보다 더 특별하고 뛰어나게 느끼면, 우리는 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서도 그들의 의견을 과대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의 특별한 재능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과 그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둘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누구나 이런저런 문제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당신이 상대방을 깊이 알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을 잊지 말고 당신 자신과 타인에 대해 더 너그러워지길 바란다.
인센티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
인센티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며, 사람들이 거의 모든 것을 정당화하거나 변호하게 만든다.
아무리 많은 정보와 사실적 근거가 주어진다 해도, 뭔가가 참이기를 바라는 절실한 욕구나 필요만큼 강력하게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없다.
인센티브는 사람들의 행동과 믿음을 정당화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연료다.
인센티브의 또 다른 강력한 힘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욕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겪어봐야 안다
위기와 역경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시절에 예상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한다.
우리는 미래의 성공과 행복을 상상할 때 현실적 측면은 쏙 빼놓고 이상적인 그림만 그린다. 그러나 실제로 삶에서는 언제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 공존하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멀리 보는 것에 관하여
장기적 목표는 자신하기 쉽지만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투자나 일, 인간관계에서 장기적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대다수 사람이 안다. 그러나 “장기 전략으로 갈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 밑에서 정상을 가리키면서 “저기에 올라갈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음, 멋진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 수많은 시험과 고난이 시작된다. 장기전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또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을 안겨준다.
장거리 달리기는 당신이 견뎌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들의 집합이다.
장기적 계획과 실행을 위해서는 단기적 리스크도 간과하지 않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생각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자신을 속여 틀린 생각을 믿는 것이 실수를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진정한 장기적 사고를 하려면 인내심과 고집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이것이다. 당신의 업계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소수의 것들을 파악한 뒤, 그 외의 나머지는 전부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수정이 필요한 대상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렇게 파악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장기 전략을 적용할 대상이 된다. 그 외의 나머지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시간은 눈덩이 효과를 내는 힘을 지녔으며 그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장기 전략을 세우되 목표일을 유연성 있게 관리하면, 또는 목표일을 정해놓지 않으면 성공 확률이 훨씬 더 커진다.
복잡함과 단순함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몇 개의 간단한 요인이 결과의 대부분을 만들어낸다. 그 핵심적인 몇 가지만 이해하면 상황을 충분히 처리하거나 해결할 수 있다. 그 외에 추가되는 많은 것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또는 혼란을 일으키거나 대단한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한 불필요한 거품일 뿐이다.
단순함은 무지함으로 착각하기 쉬운 반면, 복잡함은 상황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소수의 요인이나 변수가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하지만 그 소수의 요인에만 집중하면, 상황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나 운에 의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많은 요인과 선택지를 고려할수록 문제를 더 잘 관리하며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 상황을 더 잘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어려워서 좋을 것은 없다. 복잡한 것에 지나치게 끌리고 지나치게 힘을 쏟을 수는 있다. 하지만 큰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는 남는다
언제나 인간은 고난을 겪은 후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회복하지만 고난의 흉터는 영원히 남는다. 그 흉터는 리스크나 보상, 기회, 목표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영영 바꿔놓는다.
당신과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은 당신과 다른 사고방식이나 관점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들은 다른 목표, 다른 견해, 다른 욕구, 다른 가치관을 지닌다. 따라서 사실 대부분의 논쟁은 의견이 아니라 경험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현명하다. “저 사람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엇을 경험했기에 그런 견해를 갖고 있을까? 만일 저 사람과 같은 경험을 한다면 나도 저렇게 생각하게 될까?” 대부분의 경우 이 질문은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진짜 이유를 일깨워준다. 하지만 이 질문을 생각해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가 내 견해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은 심리적 불편함을 초래한다. 내가 무지하고 뭘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대신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나보다 생각이 짧은 것이라고 믿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속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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