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세대의 새로운 프레임을 정의하다
지금 이 시점의 분위기에 딱 들어맞는 것이 바로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입니다. 이 시장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움직임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예측'(Prediction)은 모든 게임의 본질이 되었어요.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주류를 결정하고,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AI 시대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규정하는 새로운 흐름이자 메타 미학이죠.
‘예측’은 모더니즘(Modernism),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만큼이나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것이 우리 세대의 패러다임을 결정짓는 기준이고, 우리는 이 흐름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 지금의 비즈니스 방식, 즉 혁신을 ‘위험을 감수하는 자본(capital at risk)’으로 인식하거나 ‘프론트엔드/백엔드’ 서비스 모델 등이 뿌리내리게 된 것도 모두 포스트모더니즘 때문이었고, 그만큼 널리 퍼져 있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 ‘예측’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본질적으로 결별하는 움직임이며, 그 이후를 여는 변화입니다.
- 지금 우리가 무엇의 시작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한 시대의 끝을 보고 있는지 순간엔 구별이 굉장히 어렵죠. 초기에 ‘미래’라고 여겨졌던 AI의 많은 성과들이 사실은 구시대 유물의 마지막 형태를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이제 모든 가치 창출의 중심에는 예측이 있습니다.
- 예측 시장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단위를 제공합니다. 과거에 특허가 진보를 상징했던 것처럼, 예측은 야망을 조직하고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가진 지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예측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만들어낸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세상에 새로운 목표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즉, 우리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우주에 질서를 만든다는 거죠.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
우리가 요즘 “예전에는 뭔가 직접 만들던 시절이 있었지”라고 그리워하는 감성의 상당 부분은 사실 모더니즘(Modernism)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더니즘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장식했던 중심 사조였죠. 이런 사조를 ‘운동(movement)’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술·비즈니스·국가 등 각 영역에서 수십 년간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던 대규모 패턴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던졌던 시대입니다.
모더니즘의 절정기에는 국가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조직 형태가 인류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다민족 제국(예: 합스부르크, 오스만)들은 쇠퇴하고 하나 된 민족과 언어, 미학, 역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잘 맞춰진 부품들의 합처럼 인식되었고, 하나의 민족 유산이나 하나의 과학 체계를 이야기하곤 했죠.
하지만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모더니즘 역시 전쟁의 상처를 남긴 뒤 그 자리를 새로운 시각으로 내주었습니다. 이제는 정체성이 일률적으로 정해지지 않고, 각 케이스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으로 이동하게 된 거죠. 모더니즘이 ‘원인과 인과율’을 강조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조합과 배열의 무한 가능성’에 더 주목합니다. 누군가 관찰하는 ‘한 가지 배열’이 있고, 또다른 누군가에겐 전혀 다른 배열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이트의 자아(ego)를 표면적으로 해석하거나,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같은 예술이나, 맥킨지 같은 컨설팅 모델에서도 이런 조합의 논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즘을 경험하고 싶다면, ‘프렌즈(Friends)’라는 시트콤을 먼저 웃음소리 없는 버전으로 보고(각 요소 파악), 그 다음엔 웃음소리가 들어간 버전으로(완성된 결과물) 보면 됩니다. 아니면 리얼리티 TV든 프로레슬링이든, 어디서든 이 원리를 느낄 수 있죠.
포스트모더니즘은 곧 ‘프론트(Front of House)/백(Back of House)’라는 분리된 서비스 구조, 즉 저비용·맞춤형 서비스를 대규모로 제공하는 추상적 비즈니스 모델을 아주 빨리 자리잡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베이컨테시 라오(Venkatesh Rao)의 ‘The American Cloud’라는 에세이에서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거대 물류 시스템(음식, 에너지 등)을 바탕으로, 해안가 소비자들은 스타벅스나 홀푸드처럼 깔끔하게 재구성된 ‘상황’을 경험한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이 관점은 너무 강력해서, 가장 뛰어난 저술가들이 오히려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에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오늘날 미적 생산은 상품 생산 전체에 통합되었다. 상품이 더욱 새롭고 신기해보이도록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는 경제적 긴박감이, 미적 혁신과 실험을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위치에 놓게 만들었다.” 이 말은 병원이 치즈케이크 팩토리처럼 운영되어야 한다는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의 기사나, 모바일 앱 개발 현장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는 이겁니다: 무언가의 의미란 ‘그것이 어떤 목적을 위해 구현되었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보(progress)’에서 ‘혁신(innovation)’으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보’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매우 다릅니다. 모더니즘은 진보를 그저 ‘자동적으로’ 계속되는, 멈추지 않는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스스로 현실을 만들어내는 예언이 되기도 했죠. 20세기 초반,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생활 수준이 급격히 오르는 모습이 그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간들은 ‘진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대신 ‘혁신’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겁니다.

예전에는 ‘진보’가 순전히 의지의 힘이나 운(fortuna)에서 비롯된 성격이 강했지만, ‘혁신’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개념입니다. 혁신은 목표를 평가 가능한 위험 단위로 재구성하고, 그 위험을 신중히 감수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시켰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이제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모험을 감수하는 병렬적인 노력으로 전개됩니다. 여러 내기를 조합해 가능성을 현실적인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 혁신입니다. 1957년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Landmarks of Tomorrow』에서 “혁신이란 우주를 확률이나 확신이 아닌 위험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그리고 혁신은 인간이 우주에서 맡은 역할을 재정의하는데, 인간은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질서를 만들어낸다. 혁신은 단순한 인간 권력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 책임 수용의 표현”이라고 썼습니다.
드러커는 미래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당시를 정확히 묘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관점은 벨 연구소(Bell Labs)와 초기 벤처 투자자들이 미래 씨앗을 뿌리게 했고, 스타트업이 재무적으로 가능해지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 덕분에 실리콘밸리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현상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었습니다. 많은 작은 내기를 시도하고, 제품-시장 적합성을 찾으려 하며, 기업 공개(IPO)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과정 모두가 포스트모더니즘적 탐사였던 거죠. 이 모든 것은 TV에서 본 문화와도 잘 어울렸습니다.
요즘 기술 업계에서는 예전처럼 ‘진보’나 ‘혁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술 채택(adoption)’이라는 용어가 대세죠. 채택이라는 단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소비자의 특정 요구 조건을 가리키는 의미였던 반면, 지금은 그 자체가 ‘전체 과정’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힌트가 보입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가 아니라, ‘언제(when)’ 그 굴러가는 눈덩이에 합류할 것인가 하는 타이밍이라는 점입니다.
문화 속의 예측: “아프더라도 무언가 느끼고 싶다”
이제 역사적 배경은 넘어가고, 본격적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예측이라는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예측’은 두 가지 핵심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이나 더 넓게는 모든 시장에서 우리가 말하는 예측의 의미입니다. 예측은 시장이 수행하는 행위이며, 정보가 사회를 돌아다니며 관심과 자원을 매력적인 곳으로 이끌 때 일어납니다. 자원이 향하는 곳이 바로 예측의 결과인 셈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특성은 컴퓨터가 점점 예측을 잘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컴퓨터는 “이 전후 상황에서 다음으로 적합한 것을 예측하라”는 명령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구조로 제공하며, 그 능력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대중문화가 갑자기 그리고 단호하게 투기(speculation)로 기울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주식이나 스포츠 베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밈 주식도 있지만, 대중문화가 집 뒤집기 프로그램으로 가득 찬 홈&가든 TV처럼 투기 열풍을 이끌기 시작한 것은 그 전 10년 정도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운을 만든다’는 생각을 예전보다 훨씬 문자 그대로의 미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중요한 이유는, 대중 속에 우리한테 주어진 한정된 자본과 관심이 더 나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는 메타 인식(때로는 메타 환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니까, 매 순간 우리의 관심은 다음 순간의 행로와 결론을 실제로 ‘예측’하며 길을 닦아가는 에너지가 됩니다. 단순히 미래를 점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거죠.
두 번째 관찰점은, 지금 소셜 미디어가 마치 주식 거래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내 게시글이 잘 퍼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행동은 주가가 올랐는지 내렸는지 살펴보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 작용을 합니다. 이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무언가를 알려줍니다.
문화와 상업의 최전선에서는 플래시 세일과 팝업 스토어가 판매 과정에서 마찰을 제거하는 것이 항상 좋다는 관습을 깨는 사례로 나타납니다. 스니커즈 드롭은 오히려 마찰을 더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죠. 대기 순서가 곧 제품의 의미가 되니까요. 이런 점은 게임 산업이 이미 완벽하게 예견한 일입니다. 게임은 마찰 그 자체가 상품이라는 것을, 기대감이 곧 소비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의미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 걷는 여정인 셈입니다.
무언가에 얼마나 빨리 혹은 늦게 합류하느냐는 이제 그 대상을 향한 당신의 관계에서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를 보여주는 타임라인과 영상들은 점점 한 가지 메타 주제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즉, ‘당신이 그것을 예측하는가, 아니면 그것이 당신을 예측하는가?’가 바로 당신이 경험하는 핵심 감정이 된 것입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과 완전히 결별한 양상으로, 당시에는 소비가 위협 없이 포근한 담요에 싸여 있던 것과 달리 말이죠. Whole Foods에서 딸기를 사러 어느 시기에 가든 그 농장 부스의 재현은 똑같이 사실적입니다. 예측 미학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부합니다. “아프더라도 무언가 느끼고 싶다”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이게 과연 예술인가?”
무언가의 시작인지 끝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2008년 당시 오바마는 중요한 변화의 시작처럼 보였지만, 돌이켜보면 그는 사실 20세기 마지막 대통령이었죠.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스크롤되는 타임라인 피드를 신문 이후의 변화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그 피드가 마지막 신문일지도 모릅니다.
AI가 만든 예술이 Dall-E와 Midjourney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모두가 “완전히 새로운 예술의 시작이다!”라고 놀랐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시기를 향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상 마지막 포스트모던 시각예술 형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모두가 자신만의 버전을 소비할 수 있다”는 완벽한 형태가 문화적으로 사실상 구시대가 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앞으로는 모두가 AI가 만들어낸 개인 맞춤형 뉴스가 울려퍼지는 메아리 방에서 살게 될 거야!”라는 공포 심리가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존 형식과 문제에 대한 불안을 투영한 결과일 뿐입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모두가 같은 사건 시리즈에 대해 자신만의 개인화된 조합(parlay)을 갖게 될 것이다”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새로운 예술 형식은 무엇일까요? 저는 현대미술 전문가가 아니지만, 꽤 온라인에는 익숙합니다. 지금 분명히 떠오르는 예술 형식은 ‘대중이 예측한 결과가 크게 맞거나 크게 빗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20년 할로윈에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와 트래비스 켈스(Travis Kelce)로 분장한 커플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트래비스 켈스가 같은 방에 있을 세상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세상에서는 결혼했네요?”라는 캡션이 달린 이 게시물은 지금 다시 화제가 되며 팝아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 하나,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예술 형식은 NFT와 특히 밈 코인(Meme Coins)입니다. 왜냐하면, 1) ‘이게 예술이다’라는 제안이 사람들을 《봄의 제전(Rite of Spring)》 수준으로 분노하게 만든다면 흥미로운 뭔가가 있다는 의미고, 2) 이것들은 대중의 예측을 순수한 예술적 형태로 보여주며, ‘언제’ 그것과 상호작용하느냐가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앤디 워홀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두고 “모두가 자기만의 15분 유명세를 가진다”라고 유명하게 농담했지만, 저는 오늘날 “모두가 15배 수익을 내는 투자자가 된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꼭 예측 자체가 있어야 이런 예술로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측의 경로 자체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예측의 시대에서의 가치 창출
모든 시대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수직적으로 통합된 거대 기업들이 그 역할을 했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프론트 오브 하우스(front of house)’와 ‘백 오브 하우스(back of house)’라는 새로운 분업 모델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문화적 미학이 향하는 방향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비즈니스 형태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크립토는 이 점에서 매우 전위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들은 모두를 설득해야 했죠. “온체인(onchain)은 프론트 엔드도 백 엔드도 아닌 새로운 제3의 영역”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특히 실제 앱 개발에 적용하기 어렵고 표현하기 힘든 개념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모든 콘텐츠는 이제 해당 콘텐츠를 소유했는지, 언제 사고 팔았는지를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타임라인이 존재한다”는 제안으로 남았습니다. 이게 겉으로만 보면 어처구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모두 하나의 거대한 온라인 게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목표는 게임에 의해 예측당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예측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은 LLM(대규모 언어 모델)이 독립적인 제품이 되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웨이트(weights)’라는 모호한 개념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 된 것이죠. AI 모델들이 사업 결정에 참여하고 광고를 보여주며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모두가 동일한 참조 이벤트 시리즈에 대해 자신만의 개인화된 조합(parlay)을 갖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 인생 전체의 타임라인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많은 경우에 게임의 주체인 ‘하우스’가 실제로 당신의 이길 가능성을 돕고자 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예전에는 ‘Gen(세대)’이라는 표현을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예측(Prediction)’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정확한 개념입니다.)
Packy의 Great Online Game 글을 자주 떠올립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LLM을 훈련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었지만, 2021년에 ZIRP 온라인 시민권에 대해 쓰여졌습니다. ‘인터넷에 능숙하다’는 것은 이제 매우 실질적이고 수익화 가능한 경력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어느 정도 그랬지만 지금은 훨씬 명확해졌죠. 오늘날 온라인에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수익화되는 이유도 쉽게 이해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측’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밈 코인에서부터 모델 학습까지, 정보 흐름에서 더 상류에 있을수록 ‘예측하는’ 쪽에 가까워지고, ‘예측당하는’ 쪽에서 멀어집니다. 클라우드플레어의 매튜 프린스(Matthew Prince)가 “앞으로 인터넷에서 돈을 버는 방식은 AI가 아직 모르는 것을 쓰는 것이다”라고 한 말도 결코 터무니없지 않습니다.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그 길은 충분히 현실성 있습니다.
한편 미래의 기관들은 오늘날 벤처 캐피털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예측 운동을 수용하고 체화한 모습입니다. 예전처럼 고정된 펀드 규모로 단일 단계 포트폴리오의 초기 지분을 쌓는 방식은 이제 드물게 성공하는 구시대적 방법이 되었고, 지금은 모든 것이 다단계 연속성(multi-stage continuity)과 예측 경로를 따라가는지 여부에 달렸습니다.
예측 계약을 ‘원자 단위’로
어떤 시대의 빌더 패러다임이든 고유한 금융 도구가 따라옵니다. 잠재력을 소유 가능하고 거래 가능한 형태로 포착하는 그 시대만의 방식이 있죠. 모더니즘 시대에 가장 중요한 도구는 특허였습니다. 특허는 혁신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수익화하도록 돕는 것을 넘어,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진보의 도구’로 인정받는 이름표가 되었습니다. 특허는 그 시대의 사고를 응축했습니다. 발명을 구성 요소들의 합으로 정의했고, 여기서 ‘구성 요소’란 물리 부품일 수도, 기계적 공정이나 기여하는 방법론일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 하나의 발명으로 깔끔히 캡슐화했습니다.
대중이 ‘발명’과 ‘특허’를 강하게 결부시키기 시작하자, 특허는 사실상 발명 그 자체가 되어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대학과 연구자들이 “특허를 양산하고 수익화”하는 데 과몰입하면서 실제 진보에 해가 되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오랜 기간 특허라는 단일한 아이디어가 발명을 상징해준 점은 순효과가 컸습니다. 특허는 사람들로 하여금 발명가처럼 생각하게 만들었고, 각자의 역량을 조직하며 도달해야 할 기준선을 세웠습니다. 현대적 세계관에서 특허는 ‘진보’를 대신하는 표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측 계약(prediction contract)’이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주된 줄기를 이루는 거대한 개념인 ‘예측’을 한데 묶는 중심 아이디어이자, 널리 합의된 형식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플레이어라는 건 예측한다는 뜻이고,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돈을 걸어 예측에 커밋하는 행위는 “정말 무언가 발명했다고? 그럼 특허 내!”의 최신 버전처럼 느껴집니다. 더 좋은 점은, 특허는 소수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인 반면 예측 계약은 누구나 참여해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우리의 목적은 정보를 보태는 일이다
머지않아 지능형 기계가 우리 물질 문명의 상당 부분을 구상하고, 추동하고, 구현하는 세상에 도달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과학적 발견을 이루고, 로봇을 반복 설계하며, 그 밖에 또 무엇을 해낼지 모릅니다. 그건 멋진 일이고, 가능한 모든 진보를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이 ‘나도 몫이 있다’, ‘내가 우리의 공동 진보 감각에 기여했다’고 느끼는 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Predictions라는 운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무기력에 대한 해답이라고 믿습니다. 예측은 우리에게 실제로 할 일을 건넵니다.
지난 10년간 대중문화에서 투기, 도박, 그리고 공개 예측이 급증한 현상은 후기 포스트모더니즘의 마비된 무감각에 집단적으로 맞선 반란이라는 설명 말고는 달리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일부는 세련되지 못하고 속되게 느껴질지라도, 그것을 퇴행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기 발견을 향한 한 걸음 전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렇게 새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보를 보태는 일을 통해 우주에 질서를 만든다. 그리고 지난 몇 년 사이, 이것이 얼마나 널리 ‘공유된 목적’인지—어쩌면 보편적 목적일 수도 있음을—알아차렸습니다. 이보다 더 낙관적인 전망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원문: Prediction: the Successor to Postmoder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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