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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을 멈추고 느낀 것들

온라인 중독자를 위한 간헐적 단식

나는 두 달 동안 소셜 미디어를 멀리했다. 스스로에게는 시간을 되찾기 위한 실험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여러 동기가 섞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나’라는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것과 끝도 없이 반복되는 담론의 굴레에 대해 커져가는 실존적 지루함이었다. 미디어는 점점 더 미디어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었고, 그 재귀적인 구조는 나를 지치게 했다. 아마도 이건 우리가 증오해 마지않는 플랫폼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대한 작고 무기력한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에는 나름의 자존감이 담겨 있다.

포스팅을 멈추고 느낀 것들

소셜 미디어를 쉬는 것은 이제 ‘자연주의 식단’, ‘심리 치료’, ‘휴가’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 사람들은 거리를 두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또한, 자신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안식기 동안 기록한 몇 가지 관찰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한 가지 확실히 해둘 점은, 트윗이나 노트를 올리지 않았을 뿐 앱을 삭제하거나 접속 자체를 끊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글을 왜 썼는지는 다 쓰고 나면 알게 될 수도 있고, 끝내 모를 수도 있다.

  1. 소비만 하는 것은 약한 중독에 불과하다. 나를 계속 붙들어 매는 것은 바로 ‘포스팅(Posting)’이다. 포스팅을 하지 않으면 며칠, 심지어 몇 주 동안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2.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내가 나타나서 적당히 친절하게 굴어야 할 책임감이 따르는 장소가 하나 줄었기 때문이다. 오디언스(Audience)가 있다는 것은 기회이지만, 오디언스가 없다는 것은 자유다.
  3. 동시에 나는 더 투명해지면서도 더 신비로워진 기분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적어졌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사람도 줄었다. 포스팅을 하지 않는 것은 사생활을 되찾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4. 인정받는 짜릿함은 그립지만, ‘앙코르에 대한 압박(Encore anxiety)’은 그립지 않다. 반응이 폭발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것은 즐겁지만, 그런 게시물을 계속 올려야 한다는 압박은 전혀 즐겁지 않다.
  5. 테크 트위터(Tech Twitter)의 주제들에 덜 매몰되게 되었고, 대신 세상의 나머지 부분과 나 자신의 신념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온라인 서브컬처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것은 때때로 인격적 결함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6. 소셜 미디어에서 분석되는 미디어(주로 팟캐스트들)를 소비하는 일도 줄었다. 피드(Feed)가 없으면 그런 콘텐츠들은 훨씬 덜 흥미롭다. 코멘터리(Commentary)가 제품의 절반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7. 자신의 성격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피드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되는지 깨닫게 된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포스팅은 자기표현이라기보다 ‘정체성 구축(Identity construction)’에 가까워진다.
  8. 지루함이 더 자주, 그리고 더 기분 좋게 찾아온다. 침묵에도 그 나름의 질감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남들에게 잘 먹힐 만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아진다.
  9. ‘포스팅 단위’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 삶을 미래의 콘텐츠 소재로 여기며 사는 것도 그만두게 된다. 내면의 독백이 비로소 본연의 언어를 되찾는다.
  10. 과민함과 질투심이 줄어든다. 피드는 분노를 유발하는 소방 호스이자 비교 기계다. 항상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11. ‘핫 테이크(Hot take, 시의적절한 의견 제시)’에 대한 불안이 사라진다. 담론에 ‘일찍’ 참여해야 한다거나 임의적인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 그 긴박함은 가짜였고, 주제 자체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12. 다른 조건이 같다면, 잠을 더 잘 자게 된다.
  13. 창의적 에너지가 더 넘친다. 자유 시간에 즉흥적인 생각을 포스팅하는 것조차 비축된 에너지를 소진시킨다는 것이 드러났다.
  14. 더 묵직한 것을 만듦으로써 얻는 성취감을 갈망하게 된다. 트윗과 노트는 설탕물과 같다. 그것들이 없으면 더 큰 허기를 느끼게 된다.
  15. 글을 많이 썼다. 주로 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의 글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발행하지는 않았다. 올해 그중 무언가가 결과물로 나올 것이다.
  16.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은 일들을 계획할 공간이 생긴다.
  17. 누가 나에게 대화를 걸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누가 그저 나를 즐길 거리로 여기는지 알게 된다. 진정한 친구는 문자를 보내고, 나머지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18. 사회 지능적 충돌(Sociointellectual collisions)이 그립긴 하다. 모든 충돌이 의미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주 풍부했다. 그 부분은 그립다.
  19. 피드는 ‘최신성’으로 돌아가지만, 평판은 긴 시간에 걸쳐 쌓인다. 포스팅을 멈추면 자신의 가치가 어디에서 오는지 더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20. 진심 어린 무심함(Earnest nonchalance)이 늘어난다. 게임의 형국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이곳을 우주의 중심처럼 느끼게 하려는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동기가 있다. 그것이 그들이 휘두를 수 있는 힘이자 평판이 통하는 곳이며, 이미 깊이 발을 들였기에 함께할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21. ‘슬롭(Slop, 저질 콘텐츠)’의 비중이 높아졌다. AI가 만든 콘텐츠, 낚시성 게시물, 그저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콘텐츠들이 더 많이 보인다. X에서 100만 달러를 건 에세이 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쓰레기다. 피드는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그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22. 소셜 미디어는 감시 도구다. 어떤 이들은 당신의 포스팅을 통해 당신을 감시한다. 포스팅을 멈추면 그들은 알아차린다. 대개 그들의 감정은 불안, 짜증, 걱정 중 하나다.
  23. 미세한 도파민이 사라지니 현실 세계의 즐거움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24. 방 안을 둘러보게 된다. 내가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눈을 더 자주 깜빡인다.
  25. 소설이 더 강하게 와닿는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기이할지는 몰라도, 소설은 점점 더 진실하게 느껴진다.
  26.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덜 신경 쓰게 된다.
  27. 전화를 더 자주 한다.
  28. 결국 어느 수준에서는 모두 ‘지위 게임(Status games)’이다. 포스팅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모두 하나의 수(Move)다.
  29. 몇 번이나 포스팅을 할 뻔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것에도 관성이 필요하다. ‘무엇을 들고 다시 복귀할 가치가 있는가?’ 특히 팔로워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30. 나는 여전히 미디어를 사랑한다. 미디어는 우주의 중심이며 우리 각자의 세계에서 기본 설정된 중심이다. 하지만 좋은 미디어와 나쁜 미디어 사이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결국 독서, 글쓰기, 진정한 대화, 그리고 영화가 승리한다.
  31. 자존감은 붙잡기 어려운 이상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되찾을 방법을 찾는다. 우리가 시간을 되찾으려 노력할 때, 정말로 원하는 건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이 ‘우리의 것’이라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피드가 원하는 것, 플랫폼이 보상하는 것, 순간순간이 요구하는 것에 그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감각 말이다. 자존감은 어떤 면에서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대본 속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삶의 저자라는 증거다.
  32. 인터넷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끔은 이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이 교훈은 삶 전체로 확장된다. 세상은 당신이 있든 없든 굴러간다. 그러니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원문: Notes on Not Po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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