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연구 이야기를 하면, 뭔가를 더 나아지게 만들 때 우리가 ‘빼기(subtract)’라는 방법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데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는 ‘그만둘 일(to-stops)’이 필요한데도 ‘해야 할 일(to-dos)’만 계속 쌓아간다거나, 좋은 행동을 장려하는 인센티브는 만들면서도 그 행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제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1950년대에 비해 연방 규정이 17배나 길어졌다는 점이나, 특허 제목에서 ‘additive(더하는)’와 유사한 단어가 ‘subtractive(빼는)’와 유사한 단어보다 약 3배 더 자주 쓰인다는 사실을 언급해도 모두가 수긍합니다. ‘더하기’가 기본값처럼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저와 동료 연구진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낸 한 가지 이유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바꿀 때 가장 먼저 ‘더하는 것’을 떠올리기 때문에 ‘빼기’라는 선택지는 아예 생각조차 못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여러 차례의 반복적인 실험과 검증을 거쳐 학술지 Nature(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요 언론, 트위터, 그리고 직접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보면, 시스템을 바꿀 때 이런 기본적인 방법을 외면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는 데 모두가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자주 듣는 반론이 하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반론은 제가 한 번도 주장한 적 없는 내용-즉 ‘빼기가 더하기보다 무조건 낫다’-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오해는 쉽게 생길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앞서 말한 연구를 진행했고, 제 책 제목도 ‘Subtract(빼기)’이고, 심지어 ‘빼기의 전도사’라는 별명으로 소개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혼동을 막기 위해, 저는 회의나 규정, 심지어 고속도로 같은 것들 중에는 절대로 빼서는 안 되는 것도 분명히 있다는 점을 미리 강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빼기가 더하기만큼 효과적인데도 훨씬 덜 쓰이고 있다면, 그만큼 우리가 아직 활용하지 못한 잠재력이 남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예술이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뭔가를 더할수록, 오히려 예술적으로 덜어낼 수 있는 여지도 늘어납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죠. 전 세계 도시 곳곳에서 ‘포켓파크’(pocket park) 덕분에 도시 생활이 더 쾌적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작은 공원들은 대부분 낡은 건물 하나를 철거(빼기)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공원이 특별한 이유는, 그 주변에 이미 다양한 ‘더하기’가 이루어진 환경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죠. 빽빽한 콘크리트 숲 한가운데서 이 작은 공원은 푸른 오아시스가 됩니다. 이 원리는 규모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물이나 아이디어, 상황 등 다양한 곳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iPhone)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기능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세상에서 사용자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전사 회의 한 번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빡빡한 일정 속에서 몰입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로 넘쳐나는 머릿속을 명상으로 비워내면, 그제야 비로소 지혜가 들어올 여유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앞으로 ‘빼기’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과거에 우리가 왜 이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무언가를 바꿀 때 본능적으로 ‘더하기’부터 떠올리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런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학습시키고 보상하는 환경이기 때문일 겁니다. 물리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우주 전체가 끝없이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즉,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도, 동물로서 우리는 먹이나 자원을 더 많이 얻으려는 본능, 그리고 주변 환경을 눈에 띄게 바꿔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더하기’ 쪽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물론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물리 법칙이나 진화의 흐름만을 무작정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능이나 엔트로피의 방향을 거스른다 해도, 최근의 문화적 영향 역시 ‘빼기’보다는 ‘더하기’에 힘을 실어줍니다. 인류 문명 자체가 기술, 교육,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더하기’로 정의되어 왔으니까요.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더하기’에 집중해 왔고, 여태까지 그게 충분히 합리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더하기’ 본능과 ‘더 많이’라는 문화가 우리의 생각, 도시, 그리고 일정까지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있는데, 다행히 해답도 바로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해서 ‘빼기’에 주목하자고 말한다고 해서 ‘더하기’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하기, 혹은 빼기 – 이분법의 함정
근본적인 변화를 제대로 이끌어내고, 빼기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려면-그게 우리의 생각이든, 조직이든, 도시든-‘더할까, 뺄까(add or subtract)?’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더하고, 빼기(add and subtract)’라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더하기냐, 빼기냐’라는 프레임에 갇히면, 두 가지가 서로 모순된다고 여기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A가 맞다면 A가 아닌 것은 틀리다, 내가 빼기를 좋아하면 더하기는 싫어한다는 식이죠.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사고방식은 나쁜 게 아닙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이래로, 한 생각이 다른 생각과 모순된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논리적 사고가 인간의 추론을 발전시켜 왔으니까요.
이런 논리적 사고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과학적 혁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생물 분류 체계처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을 만들 수 있었고, 현대 컴퓨터의 기반이 된 수학적 논리 역시 이런 사고방식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적 사고가 항상 잘 작동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충돌하지 않는 아이디어들 사이에서 억지로 모순을 해결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더하기’가 생물학적 요인 때문인지, 문화적 영향 때문인지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실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우리가 ‘빼기’를 잘 하지 못하는 데 함께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진짜 원인인지 따지다 보면, 정작 우리가 더 나은 방법을 찾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더할까, 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 다 잘 쓸 수 있을까?”입니다. 저희가 Nature(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더하기’만 떠올리고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버려서, 사실 더 나은 ‘빼기’ 전략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물론, 만약 사람들이 ‘더하기’뿐만 아니라 ‘빼기’도 함께 고민한다면, 처음에 ‘더하기’로 시작하는 게 꼭 문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더하면 좋아진다면, 어쩌면 덜어내는 것도 똑같이 효과적일 수 있으니까요.
‘더하기’와 ‘빼기’를 모두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건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과학에서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면, 비유를 바꿔보세요. 끝없이 뭔가를 더하기만 하는 열역학 제2법칙처럼 생각하지 말고, ‘더하기’와 ‘빼기’ 모두를 활용하는 진화(evolution)의 방식을 떠올려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일정에 새로운 회의를 추가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한 일이 되지만, 그 회의가 더 이상 쓸모없어지면 과감히 없애는 것도 자연스러워집니다. 수학적인 동기부여가 더 와닿는다면, ‘덜어내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네 줄의 코드를 한 줄 더해서 다섯 줄로 만들면 한 줄이 전체의 20%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네 줄 중 한 줄을 빼서 세 줄로 만들면, 한 줄이 전체의 33%가 됩니다. 똑같이 한 줄을 바꿨지만, 결과적으로 줄어든 상태에서는 변화의 폭이 더 커지는 셈이죠. 마지막으로 짧고 명확한 격언을 좋아한다면, 오랜 세월 동안 회자된 중국 철학자 노자(Lao Tzu)의 말을 떠올려보세요. 우리가 ‘빼기’를 자주 놓치는 이유를 되짚게 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지식을 얻으려면 매일 더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매일 덜어내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일정이나 생각을 바꾸는 데든, 새로운 발명품이나 정치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든, 정답은 하나일 수 없습니다. 변화라는 걸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있어 ‘더하기’와 ‘빼기’가 서로 보완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그때까지는, 앞서 이야기한 포켓파크(pocket park)를 떠올려보세요. 왜냐하면 ‘빼기’를 놓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더 커지니까요.
원문: The Untapped Potential of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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